일상의 발견
목욕
아침. 일어나 찌뿌둥한 몸이 마음까지 골고루 퍼졌다. 어젯밤 늦게까지 책을 읽다 자서 일까? 상태가 좋지 않다. 이런 날. 목욕이 고프다. 온몸을 뜨끈한 탕 속에 넣고 아무 생각 없이 노곤해지고 싶다. 목욕탕을 갔다. 코로나 19로 인해 목욕탕을 한동안 가지 못했는데 너무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근방에는 목욕탕이 없다. 하나 있는데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곳. 그래서 차를 타고 목욕탕을 향했다. 목욕탕 주차타워에 차를 주차하고 나오는데 주차 관리자 분께서 나를 보며 말했다. “마스크 챙겨야 해요.” 나는 아차 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그래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네” 그리고 카운터까지 다 달았다. 그런데 앞에 쓰여있다. ‘마스크 미착용자는 출입을 금합니다.’ 용기를 내어 다가간다. 그런데 상냥하지만 단호한 목소리. “마스크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손님. 죄송한데요 구청에서 내려온 부분이라 어쩔 수 없네요.”이미 많이 경험한 듯 그는 내게 구청의 명령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마치 왕의 명령인 듯 그 명령으로 인해 나의 목욕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별수 있나. 다시 주차타워로 갔다. 정말 민망한 상황. 주차된 타워에서 차가 내려오는데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리다니. 내가 기다려 본 시간 중에 가장 오랜 시간. 말을 걸지 않길 바라셨는데 아저씨가 말을 거셨다. “마스크 꼭 가져오셔야 해요.” 나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까와 같지만 왕의 명령 아래 모든 것을 기가 죽어 대답했다. “네네” 차에 올라타고 나는 한숨을 깊게 뱉었다.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목욕을 포기할 수 없다. 나는 마스크를 찾으러 갔다. 머릿속에는 이미 탕 속에 들어가 머리만 내놓고 온몸을 따가우면서 뜨끈하면서 기분 좋은 그곳에 담가놓고 있다.
결국 마스크를 찾아 나는 다시 그곳을 향했다. 이제 누가 나를 막을 수 있으랴! 너무나 당당한 기세로 허리를 펴고 웃으며 주차 관리인 아저씨를 향해 마스크를 자랑하며 카운터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왕의 명령을 떠받는 듯 단호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갖춘 자신감을 가지고 그를 응시하며 자리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성인 한 명이요.” 그리고 그는 알 수 없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했다. “팔천 원입니다.” 이제 나는 드디어 목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드디어 주머니에 지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주머니가 비어있다. 잠바 주머니에도 오직 내게 있는 것은 휴대폰과 열쇠. 분명하게 챙겼던 지갑이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엄청난 부탁을 드리는 듯 말했다. “혹시 카카오 페이나 계좌이체는 안 되나요?” 그는 한 한 번의 흔들림 없이 말했다. “삼성 페이밖에 안되네요. 계좌이체는 안됩니다 손님.” 온몸의 근육이 한순간에 빠져나간 듯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모습을 보일 수 없어 뒤돌아 나는 다시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에는 목욕을 오늘 해야겠다는 마음만 가득하게 들었다. 요즘 들어 한참 나와 목욕을 하자고 졸라대는 하늘이가 생각났다.
집에 가서 이따 저녁에 하늘이랑 목욕할까? 틈이 생기니 예상하지 않았던 생각이 나를 파고든다. 그러나 나는 질 수 없다. 그래서 상상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목욕이었던 일본의 설산에서 누렸던 그 온천욕을 상상한다. 20대 중반. 일본에서 누렸던 엄청난 호사. 함께 했던 분께서 제안해주셔서 일본의 눈이 가득한 산 중턱에 있던 노천탕. 그곳에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전망 속에서 머리를 돌에 기대고 하늘과 물과 바람과 눈이 하나가 되었던 그 느낌. 난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은행이 근처에 있었다. 핸드폰으로 돈을 겨우 인출하고 나는 드디어 그곳에 다 달았다.
이제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마스크를 끼고 만원을 쥐고 그곳에서 내손에 락커 키의 열쇠를 쥐어줬다. 이것이야 말로 목욕의 열쇠. 이윽고 탈의 후 집에서 가져온 잇템을 꺼낸다. 미세모 칫솔, 닥터 그루트 샴푸, 뉴트로지나 딥클린 포밍 클렌징, 피지오겔 페이셜 크림. 이제 나는 목욕탕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은 찐목욕인이 된 것이다. 샤워와 비누칠로 탕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언제나 시작은 온탕이다. 사람이 없다. 넉넉한 탕 안에 내 몸을 넣는다. 탕이 나를 삼키고 나의 온몸이 탕에 스며든다. 그렇게 내가 사라진듯한 상황까지 놓인 뒤 일어나 천천히 폭포탕 앞에 선다. 조심스레 그곳에 들어갔다. 이곳 역시 아무도 없다. 언제나 할아버지와 아저씨들의 핫플레이스인 그곳. 기다렸다가 들어가도 눈치를 보며 금방 나와야 했던 그곳이 오직 나를 위한 곳으로 변해 있었다. 목, 어깨, 허리, 발목, 정수리, 발목, 발바닥, 발목. 강한 수압 아래 내 환부를 드러내고, 뭉쳤던 그곳이 풀리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아....” 하는 목소리는 어린 시절 아저씨들에 목욕탕에서 냈던 소리와 거의 일치한다.
이제 나는 사우나에 들어간다. 98도의 건식 사우나에서 온몸을 달구며 모래시계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참고 또 참는다. 그러다 아저씨 한분이 들어왔는데 들어오는 그 틈으로 불어 들어오는 신선한 냉기의 유혹에 못 참고 나왔다. 다시 온몸을 미지근한 물을 끼얹고 이제 냉탕을 향했다. 목욕탕 안에서 가장 깊고 가장 넓은 그곳. 목욕탕에 오면 늘 한 번씩 도전하며, 겸손한 자세가 되는 그곳에 들어가 온몸을 길게 펼치고 살랑살랑 물장구를 치며 왔다 갔다를 세 번했다.
이렇게 끝낼 수 없어 다시 온탕을 걸쳐 열탕에 잠깐 몸을 담갔다 잇템들이 가득한 세면장으로 향한다. 온몸을 닦고 가져온 샴푸와 폼클렌징을 보란 듯이 사용한다. 목욕탕 안에서는 언제나 두 계급으로 나눠진다. 잇템을 준비해온 자와 그렇지 못하여 온몸을 비누로 씻는 자. 나는 오늘만큼은 상위 레벨의 계급이다. 그토록 들어가기 어려웠던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목욕을 마친 내게 오늘만큼 선물을 선사한다. 뚱뚱이 바나나우유. 더 이상 내게 부족함 없다. 빙그레 웃게 되는 그 우유를 마시며 집을 향하는 발걸음. 나는 마지막 한 방울도 남길 수 없어 끝까지 우유를 마신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목욕은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