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언어
거대한 코로나가 세계를 잠식하는 가운데 종교는 날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의 가톨릭 교회는 236년 역사상 최초로 전국 교구의 미사를 중단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역시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며 모임을 멈췄다. 수많은 교회도 모이지 않고 온라인 예배로 진행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생각처럼 빨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상황 속에 결국 종교의 모임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런데 적막 가운데 문을 열면 더 큰 소리가 집중이 되는 것처럼 안타깝게도 교회에서 연이은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면서 세상은 소리친다.
"제발 모이지 좀 말아 주세요"
우리는 교회를 가기 위해서는 열체크를 해야 하고, 손소독제를 발라야 한다. 마스크를 껴야 하며 서로 접촉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제발 모이지 말라!” 이런 상황에서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 예배로 전향하고 있다. " 계속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교회 가야 하나?" 이 질문과 답 사이에 신앙인들은 매우 커다란 고민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조금 더 본질적 질문으로 확산이 된다.
"과연 교회가 가능한가?"
이 땅에 교회가 가능한가? 이 질문 속에 성경 속 교회의 본질적 의미를 돌아봐야 한다. 성경에서 교회를 설명할 때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한다. 바로 "예수님의 몸"이란 표현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예수님은 100% 인간이며 100% 신이기도 하다. 이 같은 논리를 확장시키면 예수님의 몸이란 비유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교회는 100%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야 하며, 또한 100%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하고 역동적으로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살펴보면 된다. 그 이유를 살피면 몸인 교회는 그것을 따를 때 비로소 교회로 가능할 수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두 가지다.
섬김.
죽음.
그리고 섬김과 죽음의 이유는 바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교회는 그런 곳이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살게 해야 한다. 만약 교회로써 모임들이 사람을 죽이고 죽게 만들어가면 그 모임을 철저하게 멈추고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 교회로써 사람을 살리고 살게 만들어야 한다.
사실 코로나라는 거대한 판데믹의 공포로 가려진 채
매일 죽어가는 사람이 주위에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산업현장에서 재해로 매일 2명씩 죽어가는 노동자들(2019년 기준 산업재해 조사)
주위에 아무도 없이 죽어가는 매일 6명의 사람들 (2018년 기준 고독사 조사)
이 땅에서 더 이상 삶을 살기가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매일 34명의 사람들 (2017년 기준 자살 통계)
그 외에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고 살아 있지만 죽은 채 목숨만 이어가는 사람들.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죽음 앞에 놓은 사람들이 이 땅을 지배 속에 오늘도 겨우 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들을 살리는 것, 그리고 살린 이들을 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다.
그동안 한국의 교회가 자람에 집중해서 몸이 많이 커졌다.
이제 그 큰 몸으로 주위에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죽어가는 자들을 살리고,
함께 살아갈 때, 그때 비로소 교회는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