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영강을 걷는다.
나는 오늘도 수영강을 걸었다. 하늘은 낮았고, 구름은 손에 닿을 듯했다.
온몸에 미스트를 계속 뿌리는 듯 습기가 가득한 장마철. 부산은 원래도 습기가 많은데 이런 날은 수영강을 걷는데 또 다른 매력을 가져다준다.
수영강을 도착하기까지 음악과 친구 되어 천천히 걷는데 이마에 송골송골 땀과 물기가 섞여 손등으로 쓰윽 닦는다. 점심을 먹고 걷는 수영강. 배가 서서히 불러오면서, 약간의 빠른 걸음으로 걷고 싶어 유튜브에 재즈를 검색했다.
Joe Henderson의 Recorda me가 흘러나온다.
1963년 헨더슨의 데뷔 앨범 Page One에서 소개된
이 앨범은 피아노의 선율을 기반으로 보사노바 느낌에 시원함을 더해 주었다.
도착한 수영강은 시원했다. 구름과 강은 잿빛으로 서로 같은 색이 어우러졌고, 나의 발걸음은 차분해졌다. 이어폰은 꼈지만 소리를 줄였다. 지나가는 소리를 집중하고 싶었다. 점점 소리가 줄어들고 넓게 깔린 하늘과 짙은 물의 소리만 가득했다. 걷는데 기운이 잘 나지 않았다. 사실 어젯밤에도 11시쯤 나가 한 시간 정도 걸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잠이 오질 않아 샤워 후 새벽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책은 잘 읽혔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작가가 쓴 생각들이 한 꼭지씩 끝날 때마다 이미지화시킨 일러스트가 좋았다. 그리고 어설픈 충고나 위로가 아니었다. 100만 명이 읽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회적 이해와 공감대를 샀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들에 흠뻑 젖었다 지금 점심을 먹고 걸으니 기운도 없고, 몸이 축 처졌다.
과정교 밑에 벤치가 보였다. 마침 하늘을 가려 주는 과정교 밑은 시원했다.
그곳에 벤치가 두 개가 있는데 인기가 좋았다. 뜨거운 볕을 피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만드는 벤치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며 벤치는 내게 참 다양한 추억을 안겨다 주었다. 카드회사의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할 때였다. 하루에 쉴 수 있는 시간은 10분. 화장실을 다녀올 때도 이석을 걸어놓고 가야 하는데 종종걸음으로 빨리 다녀와야 한다. 그래서 보통은 10분 쉬는 시간에 해결하곤 한다. 점심시간은 50분. 근처 식당을 갈 수도 없다. 대부분 도시락을 싸왔다. 콜이 많을 때는 30~40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나는 그 시절 점심시간을 누렸다. 오전에 받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다 내려놓고, 오후에 쏟아질 엄청난 고객들의 터무니없는 요청들을 뒤로한 채,
바로 앞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식사는 아주 적게 싸왔다. 어느 날은 점심을 싸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에 도서관을 향했다. 책을 빌리고, 반납할 시간은 없다. 대신 도서관 앞에 놓여 있는 벤치를 찾았다. 그곳에 신발을 살짝 벗고 얼굴을 책으로 가리고 내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음악을 듣고, 어떠 날은 잠을 잤다. 어떤 날을 가져온 책을 읽고, 어떤 날은 눕폰을 했다. 도서관 벤치에서 하는 눕폰의 맛과 낮잠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절 나를 엄청난 스트레스와 엄무의 고통 속에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출구였다.
과정교 밑 벤치는 시원했다.
날이 흐리고, 습함이 가득해서 인지 사람도 없었다.
나는 다시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보사노바의 리듬에 오른발을 맞춰 본다. 그러다가 천천히 몸이 뒤로 기대면서 눈은 깊게 감겼다. 나는 듣고 있는데, 잠들었다. 의식은 깨있는데 잠든 묘한 느낌에 시원한 과정교 밑 벤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5성급 호텔의 침대가 부럽지 않다. 그렇게 쉼을 가져다준 벤치를 통해 기운이 돌아왔다. 다시 일어나 이어폰을 빼고 천천히 수영강에 집중한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걷는다. 조금 걷자 다른 벤치가 또 나온다.
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수영강도, 하늘도, 벤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