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없었던 기간이 꽤 오래되었다.
부모님과 일하면서는 대부분 혼자였다. 부산 사무실에서는 거의 혼자 지냈다. 가끔 부모님이나 차장님이 업무차 다녀가시곤 했다. 김해 공장에 있는 직원들에게는 대외적으로는 공식적인 대표이거나 사장님의 딸이어서 함께 하기 곤란했고, 대내적으로는 오랜 시간 봐온 동생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전 직장에서의 동료는 7년 선배였다. 학부 때는 담당 분반 선생님은 아니었어서 친할 기회는 없었다. 함께 일하게 되면서는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때로는 선배였고, 때로는 언니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심지어 나는 신혼이었고 선생님은 돌쟁이 아기를 기르던 시기여서 육아에 대한 것들까지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십여 년간 동료가 없는 기간이 외로웠을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 물어보거나 의견을 나눌 동료가 없다는 것, 감정을 나눌 동료가 없다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생활의 두 축 중 하나인 직장생활에서 늘 외줄을 타고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새로운 일을 배우면서 토요일 저녁에 줌으로 스터디를 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우리 기수는 6명인데, 처음에는 단 두 명만 참여했다. 분석지를 분석하고 해석을 하면서 서로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사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없다. 서로가 배우는 입장이라 모두 다 완벽한 분석을 해낼 수가 없었다. 대표님은 빌드업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처음에는 페이지마다 분석표를 읽기에 급급했다. 다음 교육에서는 연결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전의 직장에서라면 오답이거나 정답일 텐데, 이 일에서는 오답이 없다. 상황에 따른 다른 해석을 해내야 해서 입체적인 다른 시각이 필요했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라 다른 관점과 경험에서 온 생각들을 풀어내었다. 혼자서는 어려운데, 인원이 모여 두 시간을 훌쩍 지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전체의 윤곽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스터디를 마칠 즈음이면, 역시 빌드업이 쉽지 않다며 서로를 보며 웃음을 짓는다. 대신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오는 동안, 각자 스스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함께 발맞추어 성장해 간다는 느낌. 동료가 있다는 장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