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부모님의 딸이고, 남편의 아내이고, 내 아이들의 엄마이다. 둘째를 낳기 전까지 학교에서 일을 했다. 그때는 연구원이었고, 학위과정 중의 학생이기도 했고,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때는 “저는 ㅇㅇㅇ입니다.”라며 내 이름으로 만남을 시작했는데, 오랫동안 “ㅇㅇ이 엄마입니다.”라고 말문을 여는 생활을 했다.
둘째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모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인 대표는 아버지였지만, 대표이름은 나였다. 모든 관련인들은 아버지를 사장님이라 불렀고, 나에게는 호칭이 없었다. 전공에서 멀어지는 것이 속상하고 아쉬웠지만,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했다. 시간을 자유롭게 타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일은 내 스스로를 낮추기만 해야 했다. 그 어떤 업무도 나와 상의하지 않으셨고, 아버지 독단으로 시행했다. 출근시간은 유동적인 대신 밤낮 없고 공사 구분 없이 호출을 받고 일처리를 해드려야 했다. 나는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7년 전 중기청의 정부지원사업에 신청하여 정부지원금을 받았다. 담당직원은 나 하나였음에도 지원사업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그래도 지원이 결정되자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살아있다는 느낌이 그득했다. 일하면서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이 그제야 조금 세워진 기분이었다. 대신 그와 함께 내 몸은 망가졌다. 이제야 회복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점점 노화도 진행 중이다.
출산도 자연분만이었어서 몸에 칼을 대는 일이 없을 만큼 꽤 건강했었는데, 수술을 한 후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닥치니 너무 아득했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고, 신세를 한탄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아직 한창일 것만 같은 때였는데,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이, 버티지 못하는 체력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대신 모든 것을 비우고 암덩어리를 제거한 몸은 내 세포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위의 느낌은 멀쩡한 게 아니라 만성위염인 상태인 것이었고, 늘 익숙하던 남들보다 1도 정도 높은 미열상태의 기초체온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정상이 아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의 권유에 한 입 더 먹어 배가 터질 듯 먹는 일은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도 명확했다.
앞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10년 넘게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쪼개어 강의도 듣고 자격증도 몇 개 받았다. 하지만 몸을 쓰는 일을 제외하고 보니 실체도 없는 막연함이 더 밀려온다. 대학원을 알아보려 상담했던 지인인 교수님의 조언은 내 나이를 더욱 실감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정의해 보자. 나 자신을 지칭하는 어구를 생각해서 나만의 명함을 만들어야지. 아직은 답을 찾지 못했다. 나를 지정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내가 찾고 싶은 이름, 듣고 싶은 수식어는 과연 무엇인가.
다행히도 이제 방향은 좀 정해진 것 같다. 나는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평안함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긴장을 풀고 각자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 되기를 바란다. 내 이름은 좀 더 느긋이 좀 더 깊이 생각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