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

by 물빛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장, 단점을 깨닫는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언니와 대화를 하다가 언니가 원래 자기 것은 자기가 잘 안 보인다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 저를 잘 아는 언니들 눈을 믿어보려 한다고 말하며 웃어넘겼었다.


문득 나를 '도시락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 대표님을 소개해 준 이가 이 친구인데, 우리 사무실에 사무원으로 와서 함께 일했었고, 대표님의 동생이다. 꽤 오래전인데도 기억이 나는 것이 "선생님은 요리 하나도 못하게 생겼는데, 진짜 잘해. 신기해요." 하던 말이다. 아이를 낳기 전이라 혼자는 아니지만 거의 혼자 살던 때였다. 당시에는 나와 동료 선생님이 매일 반찬을 준비해서 도시락을 챙겨갔었다. 선생님은 함께 살던 시어머님의 반찬이 주였고, 나는 혼자 사니 전부 만들어야 했었다. 사무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오손도손 먹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땐 무덤덤하게 넘어갔었는데, 이 친구의 말을 듣고서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었던 것도 같다.


생각해 보면 피아노를 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나는 전공을 해도 될 만큼 잘했다. 아빠는 반은 자랑스럽게, 반은 슬픈 듯이 피아노 사사 테스트를 받으러 갔던 일화를 이야기하곤 한다. 한참 경제적으로 힘들던 때였는데, 추천을 받아서 보냈더니 합격해 버렸다고 했다. 사실 속으로는 떨어지길 바랐는데, 합격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는데, 결국 반년밖에 못 보냈다고 아쉬워하는 이야기였다. 당시 교수님이 내가 절대음감이라고 말해준 것도 고교 때 미술선생님이 미대 보내라고 따로 연락하셨다는 이야기도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엄마한테 들었다. 당시에 그걸 알았다한들 딱히 달라질 바도 없지만, 굳이 뒤늦게 이야기해 주시는 건 대체 무슨 마음인 걸까. 사실 피아노나 미술을 전공으로 하지 않기로 한 건 하나도 안타깝지 않았다. 콩쿨을 나갔을 때 드레스 착용의 유무가 아니라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었고, 더욱더 하고 싶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주가 많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이다.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그것 하나만을 주장할 수가 없어서이다. 그래서 최선이 아니라 차선으로 그다음으로 순서를 자꾸 미루게 되는 일도 생긴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기도 한다.



My way 작가님 덕분에 브런치북으로 발행되지 않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발행취소를 했더니 댓글은 사라지고 재발행 시에 브런치북으로 발행은 안되어서

새글쓰기로 발행했습니다

작가님들의 감사한 댓글은 카피해둔 것으로 다시 붙여서 대댓글을 쓰겠습니다.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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