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약속도 없이 "지금 절인데, 집에 있으면 갈게."하고 오신 엄마. 엊저녁에도 뵈었던 건 함정이다. 여하튼 이유도 모른 채 엄마를 보자마자 손에 들고 오신 스티로폼 상자를 보고서 이해를 했다. 보살님이 주신다던 김치를 가져오신 거다. 어제 들은 얘기로는 엄마께 주신 걸 나눠 주시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감사하게도 내 몫을 따로 챙겨주셨단다.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지. 엄마는 늘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나타나신다.
밥 먹자는 엄마의 말에 대체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한 일본라멘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라멘은 지역마다의 특징을 가진 종류가 다양한데, 거기에서는 라멘 가게는 많지만, 아이가 먹고 싶은 종류는 먹지 못한 것들도 많단다. 급히 외출모드를 하고 이모께도 연락을 드려서 이모댁 앞에서 이모도 태우고 기장으로 갔다. 모처럼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를 보다가 문득 엄마는 이런 생활을 기대하고 고대한 걸까 싶었다. 아무 때나 찾아가도 반겨주고 좋아해 주고 같이 밥 먹고 무언가를 하는 삶. 옛날 동네에서 누구네 집이랄 것 없이 모두가 다 사정을 아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볼 수 있는 삶 말이다.
성인이 되고 내 생활을 내가 관리하게 되면서 나는 무척 계획적인 인간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나 변경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삶을 내가 조절하고 관리할 때 비로소 내가 제대로 기능한다고 여겼다. 공연을 보려면 미리 예약을 하고, 음식점에 가려면 미리 정보를 확인하고 일정을 정하고 간다. 물론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삶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불확정적인 일상이 불편했다. 계획대로 움직이면 시간 낭비가 적고, 그렇게 생긴 시간들을 모아서는 쉴 수도 있고, 혼자 어딘가 틀어박혀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어도 좋았다. 그저 내가 혼자서 숨 쉬고 편안히 쉬어도 될만한 공간과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일 뿐이다.
아이가 정한 메뉴라 어른들에게는 안 맞을 수도 있는데, 직원들은 면의 삶음 정도나 짜고 매운 정도를 섬세히 물어봐 주었다. 어른들 드시기에 적당하도록 보통보다 면은 좀 더 부드럽게 익히고, 간은 살짝 적게 해 주시기를 요청드렸다. 엄마와 이모는 낯설지만 맛있다고 한 그릇 다 드셨다. 식후 어떤 곳으로 디저트를 먹으러 갈까 고민하다가 새로 생긴 곳으로 가기로 했다. 겉보기에는 삭막해 보이는 언덕 위의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아주 포근하고 생생하게 꾸며져 있었다. 넓고 쾌적하고 온도와 습도가 적당항 공간에서 엄마는 아주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는 나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도 엄마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이가 아빠와 협상을 하기로 한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아이에게 할머니와도 협상을 하자고 제안하셨다. 이르면 봄, 늦어도 올해 안에 할아버지와 아이가 사는 곳에 가보아도 괜찮겠냐고. 아이는 조금 난감해하긴 했지만, 크게 표 내지는 않고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산책을 하며 아이가 말한다. 사실 난감한 것은 이제 용서를 할 것도 감정적으로 나쁜 것도 없는데, 그냥 할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에게도 여지가 생겼다. 나를 옭아매어 내 목을 조를 것 같던 시간도 시간이 흐르면 감정보다는 사실이 남는다. 어른들이 한 번도 제대로 말한 적 없던 할아버지의 잘못을 " 그건 할아버지가 잘못하신 게 맞아."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아이가 감정적으로 홀가분해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나를 낳은 엄마. 나보다 한참 어린아이였을 때 엄마가 되어서 얼마나 무섭고 힘든 일이 많았을까. 자라면서는 엄마의 비합리적인 모습과 감정적인 모습이 너무 부담이 되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 반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말만 귀담아서 안 듣는 것 같은 엄마. 엄마도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내 입장과 아이의 입장도 제대로 들여다볼 준비를 어느 정도 하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