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큰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너 아빠랑 완전 똑같아."이다.
아이가 자라면서는 얼굴이 수십 번 변한다. 갓 태어난 아이는 눈코입은 나를 닮은 것 같고, 얼굴 윤곽은 남편을 닮은 것 같았다. 길쭉한 손가락은 나를 닮았는데, 엄지만 큰 만화같은 발가락은 남편을 닮았다. 살이 오르고 키가 크면서는 누굴 닮았나 싶더니 어느 날 뒷모습을 보니 영판 남편이랑 똑같더라. 근육 모양 뿐 아니라 걸음걸이며 걷는 자세마저도 닮아갔다.
그러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이십 대의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빼닮은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곤 했다. 아이의 십 대에는 남편이 많이 바빠서 주말부부가 격주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울 때였다. 게다가 아빠의 이십 대 시절을 아이는 본 적도 없지 않은가. 그때마다 매번 놀라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남편도 아이가 너무 이해되니까 차마 뭐라 혼내지도 못하고, 진한 유전자의 영향력에 개탄하곤 한다.
지난 하반기 아이에게 중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는 운전면허 취득이었다. 한 학기를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에서 지내고 나니, 자전거나 바이크 등 운송수단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당 자전거 주차장을 1면씩 제공한다. 바이크도 주차 가능한 자리로 입학하면 모두에게 제공되고 입학예비모임에서 학생증과 함께 본인의 자리를 받는다. 차량은 신청하면 무료로 주차가 가능하다. 처음 생활 1개월쯤 후에는 자전거를 살까 고민을 하더니, 여름방학에 자전거는 현실적이지 않은 수단임을 확신했다. 아이의 집은 학교 근처인데, 해발고도가 800m 정도이다. 번화가는 역 근처인데, 역에서 집까지는 당연하게도 지속적인 오르막이다. 그 사이에 마트나 편의점 등 아이가 반드시 가야 하는 곳들이 포진되어 있는데, 역에서 집까지가 도보 50분 정도 걸린다. 여름엔 비가 계속 오고, 겨울에는 눈이 폭폭 쌓이는 동네. 자전거는 제외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지역의 친구들 중 많은 아이들이 차를 소유하고 있다. 바이크를 타는 아이들도 간혹 있는데, 역시 기상에 따라 활용도가 낮아진다. 그럼에도 무언가 문화생활이라도 하려면, 바이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엄마로서는 운전면허를 취득해서 한국에서든 일본에 가서든 내 생활에 도움이 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바이크를 타는 위험성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문제는 일본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한국에 비해 상당히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점이었다. 필기시험을 위한 수업을 빠지지 않고 들어야 하고, 합격점도 거의 만점에 가깝다. 학생들이 방학에 주로 면허취득을 하는데, 빨라도 2달은 너끈히 걸린다고 했다. 자동차면허와 이륜면허가 비용만 다를 뿐 소요되는 시간은 비슷하다. 비용은 한국의 5-6베 정도 든다. 지난 학기는 그룹작을 여럿 해야 했어서 시간도 부족했고, 좀 진지하게 알아보자 하고 지나쳤는데, 방학이 되니 아이가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다.
가족이 모두 모인 날, 아이는 선언했다.
"운전할 것도 아닌데, 면허는 따서 뭣하겠어요? 면허는 나중에 필요할 때 생각해 볼게요."
대신 아빠에게 협상을 하자고 했다. 생각해 보니 바이크든 차량이든 손쉽게 마련할 수 있는 수단도 아니고, 면허를 취득하는 것도 시간과 돈이 많이 드니 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사고 싶은 기타가 있는데, 아빠가 지원을 좀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남편이 아이가 대입에 성공하면 기타를 한 대 사주마 약속한 적이 있다. 남편은 일본 정착금이 생각보다 많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가 원하는 기타의 수준이 남편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서 차일피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이기도 했다. 자기가 준비할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 선이니, 아빠가 반을 지원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아이가 한 말. 남편이 스물에 했던 말이랑 똑같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남편은 1년 기숙사 생활 후, 쭉 하숙을 했다. 그 학교도 산이라 자전거를 타겠다고 시도했던 적도 있다. 학부 때야 자전거를 제법 탔지만, 대학원에 가고부터는 그냥 걷기를 선택했었다. 그리고, 나와 결혼을 한 후에야 면허를 땄고, 운전연수도 내가 해주었다. 당연히 우리가 차를 살 계획을 하고 나서였지.
병원 다녀오는 길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좀 빡침 포인트가 올라와서,
“네 인생에서 15년쯤은 내 지분일 거잖아. 그런데 아빠 유전자만 복붙 한 건 좀 배신감 느껴져.”
라 말했더니,
“엄마. 걱정 마요. 대부분은 아빠한테서 받은 거 인정하는데, 나는 엄마의 미친 예민함을 받았잖아요. 그게 내 인생에 제일 중요한 포션이야.”
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