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by 물빛

요리하기에 애매한 상태를 유지 중이라 일주일째 직접 해 먹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이제 예비 고삼이라, 아이에게 식사 준비를 요청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한 끼는 간단식으로 집에서, 한 끼는 배달, 한 끼는 식당에 가서 먹고 있다. 아무래도 하루 중 한 번은 샐러드 위주의 식사를 하려고 하다 보니, 동네의 샐러드를 파는 가게는 다 가본 듯하다.


낮에 좀 헤비하게 먹은 날이라서, 샐러드를 먹으려고 샐러드 전문점에 가려던 참이었다. 샐러드 가게 근처에서 아이와 망설이다 샐러드 가게 옆 가게로 들어갔다. 그곳은 평소에 잘 가지 않지만, 동네 사람들이 자주 가서 북적이는, 꽤 핫플인 상가 내 카페형 빵집이다. 저녁 시간이라 마침 샐러드는 한 팩이 남아서 집어 들었고,

아이는 피자를 먹어보겠다 하여 페퍼로니피자를 주문하고 결제를 하다 깜짝 놀랐다.

"어? 두 개 가격이 이렇게 싸? 피자 가격이 이런 걸 보면 사이즈가 작은가 보다."

피자는 주문하면 바로 구워주는 시스템이라 번호표를 받고, 샐러드만 우선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샐러드 통 안에 작은 소스컵이 들어있었다. 소스뚜껑을 열기 전에 이건 무슨 소스일까 했더니, "참기름, 비니거, 참깨 아닐까요?"라 한다. 포크로 찍어서 맛을 보니 이 녀석 귀신이다. 아이가 말한 그 조합에 당분을 넣은 맛이었다. 깨알같이 참깨 한 알이 뚜껑에 붙어있는 게 보였다. 샐러드는 그냥 소스 없이 먹는 걸로 정했다. 사탕이나 초콜릿처럼 원래 달아야 하는 음식은 괜찮지만, 식사용 음식에 단 맛이 나는 것을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피자가 나왔다. 당황스럽게도 피자는 커다란 도마째 나왔다. 거의 아이들 8절 스케치북만 하다. 그런데 이 큰 사이즈를 겨우 4등분 해서 서브해 주었다. 돌아보니 셀프바가 있어서 나이프를 챙겨 와 좀 더 잘랐다. 이제 먹어볼까? 한 조각 집어드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응? 갓 구운 피자인데, 치즈가 하나도 안 늘어진다. 자를 때도 좀 이상하긴 했다. 한 입 먹고는 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피자라며. 형태는 피자가 맞다. 도우 위에 빨간 토마토소스가 보이고, 치즈가 두텁게 녹여져 있다. 그런데, 포카치아에 가까운 맛이 난다. 포카치아를 도우로 이용했다는 말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보기와 다르게 피자를 먹었는데도 소스맛도 치즈맛도 느껴지는 게 없다. 포카치아를 닮은 퐁신한 빵을 먹는데, 짠 페퍼로니 맛이 날 뿐이었다.


이리저리 뒤집어 보는 나를 보다가 아드리가 한마디 한다. "여기는 100프로 가짜치즈를 쓰네요. 보통 피자전문점에서는 진짜치즈랑 섞어 쓰는데요." 아이는 가짜치즈는 팜유에 뭐랑 뭐랑 섞어서 만들고, 어쩌고저쩌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근데 가짜치즈는 식품법상 식품이 아니라 기타 가공품이에요. 제빵사 자격증 책 보고 알았어요." 아이는 베이킹을 취미로 하고 있고, 제빵사에도 관심이 있어서 자격증 관련책을 샀었던 기억이 났다. 빵 한 조각과 샐러드를 먹은 셈이라, 배는 부른데 입이 즐겁지 않고 기분이 나빠져서 아이와 차를 한 잔 마시고 저녁 걷기를 하기로 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왜 안 가게 되었었지? 이곳은 원래 비건빵집 혹은 소화가 잘되는 빵으로 시작한 작은 매장이었다. 아파트 입주 초부터 입점한 가게인데, 운영방식이 독특했다. 처음엔 주 2회만 판매하고, 완판이면 문을 닫았다. 희소성에 사람들이 줄 서서 빵을 사기 시작했고, 모닝빵류나 식빵은 맛도 괜찮았다. 추구하는 바와 같이 소화가 잘 되는 빵이었다. 그런데, 다른 빵들은 정체성이 모호했다. 바게트는 안팎이 다 말랑거리고, 포카치아와 치아바타는 모양만 다르고 식감과 맛이 같은 수준이었다. 이름난 빵 종류는 많은데, 그 무엇도 각 종류의 빵 특성이 살아있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는 기본을 지키지 않는 가게였던 것이다.


재작년인가 상가의 명품매장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확장이전해서 카페형으로 만들었는데, 소위 대박이 났다. 늘 손님들로 북적이고, 상가데크까지 테이블을 가득 놓아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파트 단체톡에서도 선호하는 사람과 공유지를 사적으로 사용한다며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뉘었었다. 한동안 안 갔었는데, 새로운 샐러드를 먹어보고 싶어서 갔다가 또다시 그 기본에서 딱 마음이 걸려버린 것이다. 그 가격에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계속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내게는 고민하는 지점이 가성비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내가 먹고 싶어서 주문한 메뉴에 대해 기대한 맛이 있는데, 완전히 다른 개념의 것이 나와버리면 마음이 상한다. 추구하는 바가 있을 때,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정녕 어려운 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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