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

by 물빛

살다 보면 스러지고 사라지고 싶은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순간순간의 파도에 휩쓸릴 때 중심을 잡기란 정말 쉽지 않다. 손을 내밀어주는 것만 같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고, 내려가는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좀체 가늠하기 어려워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놓지 않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

혼자인 게 편한 줄 알았는데, 막상 힘든 시간이 닥쳐오면 곁에 누군가 있어 준다는 사실이 그렇게 위안이 되어줄 수가 없다. 연인이란 이름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그 이름이 무엇이 중요할까. 생각해 보면 중요한 순간에 내가 넘어지지 않게 지지해 주는 이들이 있었다.

나만 알던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친구는 말해주었다. "걱정하지 마. 너는 좋은 여자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 되어 줄게."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를 한 후 파투났을 때, 다른 친구는 등을 토닥이며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라고 말해주었다. 수술을 앞두고서 망연해할 때, 소중한 언니는 "자기 무슨 일 있었어?" 하면 진지하게 물어봐 주었다. 소송을 했다고 했을 때 또 다른 언니는 말해주었다. "네 감정에 솔직해. 너 괜찮은 거 아니야."

말없이 다독여주는 이도 있고, 맛난 것을 나누는 이도 있고, 말대신 책으로 대신하는 이도 있다. 음악으로 전하는 이도 있고, 웃음을 선사해 주는 이도 있다. 제각각 자신만의 표현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지탱하고 도와준다. 매일 안부를 물으며 사는 것은 아니어도 진심을 다해 공감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 함께 같은 시간을 살아가 주는 이들 덕분에 큰 파도가 와도 휘청거릴지언정 휘말려 들어가지 않고 또 일어서 파도를 탈 수 있게 된다.

참 다행이다. 함께 하는 세상을 체득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현실세계에서든 온라인세계에서든 동굴 속에 있기로 결심했다면 모르고 지낼 뻔했다. 살아있지만, 마음이 억겁같이 무거워 살아있지 않은 것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기분으로 살고 싶진 않잖아. 나도 삶이 파도 타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참 다행일 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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