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사랑은 유효기간이 짧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적어도 과학계에 잠시 발을 적신 입장이라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랑이 유효기간을 지닌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설명이나 뇌의 활성 변화를 보면,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쪽도 온전한 진실은 아니다. 감정은 달라질 수 있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관계를 맺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 순간의 감각은 영원히 내 안에 고스란히 남는다. 지워지지 않은 채, 어딘가에 봉인된 것처럼. 그래서 나는 사랑이 쉽지 않았고, 여전히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옅어질 수 있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처음 마음을 나누고 연인이 되던 순간을 기억한다.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붉어진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설레던 시간. 손을 잡고 걷는 그 시간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느껴질 때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니 볼 수만 있어도 행복이 넘치던 시간이 흐르면 문득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만나고 있는 걸까. 이 관계는 괜찮은 걸까. 계속 이어가도 되는 걸까. 이쯤에서 선택의 시간이 온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멈출 것인가. 결혼을 선택했다면 또 다른 설렘과 기쁨이 한동안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며, 둘만의 생활이 시작된다. 밤에도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큰 안정감과 자유를 준다. 하지만 곧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결혼은, 이 나라에서의 결혼은 오직 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완전한 내 편이라 믿었던 사람이 더 이상 내 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서서히 절망에 가까워진다.
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아이를 처음 안았던 순간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이 작고 연약한, 꼬물거리는 이 존재에게 라면 내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어떤 별보다 반짝이는 눈, 오물거리며 방싯거리는 입, 통통해서 금방이라도 기우뚱 넘어질 것만 같은 발까지 이쁘지 않은 구석이 없다. 겨우 일어서 뒤뚱거리며 한 발짝씩 내딛는 모습도,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음-마", "압-빠" 소리 내는 것도 그저 귀엽기만 하다. 어른들은 모두 모여 아이 하나만 쳐다보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 작은 존재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하지만, 이 행복도 한정적이다. 유효기간은 어쩌면 아주아주 짧다. 아이는 집을 벗어나 친구를 알고, 세상을 배워가며 자란다. 그 순간 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아이가 성장하는 일은 분명 기쁜 일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에는 왠지 그동안 쏟아부었던 시간과 마음이 어느 순간 내 손을 떠나버리는 것만 같은 허전함이 남는다. 넘실거리던 파도가 조용히 흩어지는 것처럼 사라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사랑은 한순간을 영원처럼 느끼게 하며, 기꺼이 모든 힘을 쏟아붓게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연인이 서로에게, 아이가 부모에게 건네는 말들. 우리는 그 말들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기로 한다. 영원할 것처럼 말하고, 영원할 것이라 믿는 척한다.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약속을 끝내 붙잡아보려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도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쳇바퀴 속에 들어간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외로움이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오래 붙잡고 싶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