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의 어느 날 아빠 회사가 부도났다. 아빠의 사업은 형제들이 연결되어 있는 업체였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자라게 되면서야 알았지만, 일단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다. 그것도 자주자주.
거의 매년 이사를 다녔다. 학교 앞 동네를 뱅뱅 돌다가 한 번은 우리 반 남자애의 부모님이 집주인이었던 적이 있었다. 한 해는 부모님이 동네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셔서 한동안 놀림을 받고 주눅이 들어있기도 했다. 몇 번의 이사를 하고 그다음 해에는 좀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학교까지 가는 길이 오르막으로 쭉 1킬로 정도 거리였는데, 새벽이면 아빠가 깨우셨다. 학교를 지나 뒷산 꼭대기까지 등산을 하고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하고 등교를 했다. 매일매일이 참 힘들었다, 성큼성큼 늘 앞서 걷는 아빠와 새벽마다 굳이 일으켜 깨우는 엄마가 미우면서도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 집에 일 년 정도를 살다가 좀 더 먼 거리의 집으로 이사를 갔다. 큰아버지 소유의 건물이었고, 아빠가 다시 일어서실 때까지 꽤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재작년에 작은 아이가 전학을 했었다. 부동산을 통해 괜찮은 오피스텔을 구했다 싶었는데, 그때의 바로 그 집 옆 동네였다. 약 40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지날 때마다 아릿했다. 동네가 재개발로 많이 달라졌음에도 그 골목은 여전했다. 이사를 하는 마음이 오롯이 기쁜 것만이 아니어서 더했을 테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사를 하고 전학을 한 덕분에 아이가 많이 안정되었다. 조용한 동네였고, 우리 집과 아주 멀지는 않아서 아이는 운동삼아 달리기 코스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동네에서 생활하는 동안 아이는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경험을 하면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운동을 하니 신체의 건강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반년 간의 짧은 생활을 마치고 다시 지금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나도 아이도 아픈 기억을 토닥이며 좀 치유된 느낌이었다. 아이는 작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전과는 달리 학교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 여전히 운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건강을 위해 주기적으로 달린다. 근육도 생기고, 본인 스스로도 이전에 비해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음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보인다.
이사는 여행과는 달라서 내 삶이 통째로 이동한다. 어떤 사정에서든 생활의 모든 것이 달라지면, 내 생각을 다시금 정리하고 일상을 재정비하게 된다. 같은 환경에서 가능한 것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체득한 경험이었다. 물리적인 변화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달라지니까 그 변화는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다가왔다. 결국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의 문제인가라는 생각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