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by 물빛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아파트와 대각선에 위치해 있어서 게이트를 나가서 신호등을 두 개 건너면 도착한다. 4학년이 되었을 즈음에는 동시신호로 변경되어서 대각선으로 한 번에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거리상 가장 가까운 건물이며, 우리 집은 저층이라서 실질적으로는 가장 가까이 사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거의 매일같이 지각했다.

아이는 학교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가 없거나 선생님과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생님들은 책을 좋아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라 늘 좋게 평가해 주셨다. 학교 생활에 있어서 아이의 문제는 지각뿐이었다.

지각은 내 상식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해결이 쉽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는 학교는 정해진 시간 내에 무조건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등교 시간이라는 것도 하나의 약속이고 약속을 지키는 것은 규칙이자 습관이라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때로는 지각해서 혼이 나봐야 정신 차리겠지 싶어서 그냥 내버려 두기도 했지만, 크게 혼난 적도 없었고 아이는 여전했다. 아침에 매일매일 늑장을 부리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지 잘 모르겠고, 소모적인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들과 상담도 해보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의연하게 말씀하셨다. 스스로 할 일을 챙겨서 하는 아이이니 정말 본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시간 맞추어할 테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되려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중학교 때에도 지각습관은 여전했다. 학기 초에만 반짝 서두르는 듯하더니 어느샌가부터는 느긋하게 준비하고 먹을 것 다 먹고 천천히 걸어갔다. 벌점 따위는 상점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거라며 여유를 부렸다. 그러던 아이가 고등학교를 가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1초라도 늦으면 지각이라 찍히는 출석계를 접하자 알아서 챙기기 시작했다. 일찍 나서고 싶진 않으니 시간에 맞게끔 집을 나서고 매일 달려갔다.

놀라웠다.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을 이런 때에 쓰는 말인가 ! 언제 고쳐질까 싶던 숙제 같던 지각. 시간 개념도 억지로 가르치려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란 사실을 배웠다. 세상이 정한 규율이나 환경적인 요인보다 본인의 생각이 행동에 있어 동기가 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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