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니면서 반드시 지키려고 했던 원칙 중 하나는 가정과 직장에서의 감정을 스위치 해서 가져가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 오랜 주말 부부가 시작된 근원이다.
남편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게 무엇이건 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해진 기간 동안 매일매일 빼놓지 않고 수행하는 성실함도 갖추었다. 때로는 답답하리만치 성실한 그 모습이 그의 실력의 기반이 되어준 것을 잘 안다. 문제는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충분히 해소가 되지 않을 때 차마 내게 풀지는 못하지만, 엉뚱하게 날을 세우곤 했다. 그가 이직에 대한 생각을 내비쳤을 때, 내가 원한 건 한 가지였다.
“당신이 기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밖에서 힘들고 속상한 감정이 생길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이 가정 내에서 가족을 상처 입히고 괴롭게 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남편이 이직을 한 후 처음 주말부부가 되고서는, 남편이 있는 서울에 가는 날은 여행을 하듯 신이 났다. 내가 있는 부산에서와 달리 오롯이 둘이 보낼 수 있는 주말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가 생기자 내 생활은 더욱 특수해졌다. 직장에는 수업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 있고, 집에는 종일 내 아이를 돌봐주신 엄마와 아이가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집에서 있었던 힘듦을 직장에서 풀어놓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직장에서의 나쁜 감정을 집에 가져올 수는 없었다. 엄마는 아이를 돌봐주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아이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시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그 상황에 내 불편한 감정을 조금이리도 드러내는 것은 해결은커녕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엄마가 댁으로 돌아가시면 아이와 나 둘만 남았다. 큰아이는 낮동안 내가 없어서인지 저녁을 먹고 어스름이 져도 잘 생각을 안 했다. 밤마다 아기띠를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아직 말 못 하는 젖먹이 아이를 토닥이며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 주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렇게 충분히 재워 들어오면 그제야 나도 뒷정리를 하고 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감정조절을 제대로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을 함에 있어서 감정이 섞이면 핵심문제나 우선순위를 놓치기 쉽다. 무엇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기분을 객관화해서 인정하고 업무와는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누가 되었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나의 기분도 상대의 기분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