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by 물빛

아이들이 어렸을 때 생긴 토요일의 루틴이 있었다.

큰 아이는 친정엄마가 돌봐주셨다. 사람을 좋아하는 엄마는 손자를 돌보시면서 엄마의 사회생활을 유지하기 원하셨다. 매일 아침 아이의 옷가지와 간식, 장난감을 잔뜩 챙겨서 절에 가서 기도를 드렸다. 손자를 업고 불전 꽃꽂이를 하셨고, 이바지 음식 만들기도 진행하셨다. 젊고 체력과 정신력이 대단하신 분이라 가능하셨던 일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지만, 나는 아이의 엄마로서 난감한 점이 생겼다. 아이는 좀체 또래 아이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절에서는 감사하게도 넘치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엄마 연령 근처의 연세 든 어른들 뿐이었다. 대낮에 놀이터를 갈 기회가 없고, 밤에 퇴근 후에 가다 보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이만 놀았다.

주말부부라 남편은 금요일 밤에 집에 왔다. 곰곰이 고민을 하다 주말에 갈 수 있는 유아용 놀이센터를 찾았다. 일부러라도 또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꼭 어울려서 같이 놀게 해야겠다는 의미보다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 정도랄까. 토요일 아침반 수업에 가면 두 시간 동안 부모와 함께 놀이를 하며 여러 가지 질서와 규칙을 익혔다.

수업을 마치면 학교 앞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하고 서점에 갔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고르고 읽기도 하고, 사 오기도 했다. 날씨가 좋으면 학교 잔디밭에서 뛰어놀 수 있었다. 오후를 서점에서 한참 보내고 난 후 남편이 좋아하는 라멘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에는 토요일에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날에는 남편이 아이를 데려갔다가 수업을 마치면 학교 앞으로 왔다. 그런 날은 특별히 디저트 가게에서 케이크를 먹으며 엄마를 기다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합류해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둘째가 나고, 아이들이 학생이 된 후에도 이 루틴은 계속되었다. 놀이센터가 미술학원으로 바뀌거나 영재수업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단골집 사장님들은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같이 놀라워도 해주시고, 위로와 격려를 나누어주시기도 했다. 점점 학교 앞도 많이 달라졌다. 우리의 단골 서점이 없어지고 좋아하는 음식점도 이전하거나 없어진 곳도 있다. 새로운 곳을 가보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하면서 꽤 오랫동안 루틴을 유지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학교 일정이 바쁘니 함께 외출하는 일 자체가 줄었다. 그럼에도 가끔 토요일이면 아이들은 우리만의 토요일 루틴을 진행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면 편안하고 행복해진다. 지금은 큰 아이가 일본에 있으니 함께 할 수 없다. 아쉽긴 하지만, 큰 아이는 아이 나름의 루틴을 만들더라. 스스로 음식을 해 먹고살아야 하니, 주말이면 장을 보고 정리를 하고, 저녁에는 좀 멀리 걸어 나가 좋아하는 가게에 가곤 한다. 가끔 몇몇 군데 중 어디에 갈까를 물어보는데, 혼자만의 루틴을 행하면서도 좀 들뜨고 신나 하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작은 아이와 부모님을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작은 아이의 토요일 루틴은 식후 운동하기이다. 바닷길을 따라 걷거나 달린다.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11월 첫날, 토요일을 조용히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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