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라는 말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입에 손을 대고 ‘쉿’ 하면서 고개를 낮추고 귀를 쫑긋거리며 사방을 둘러보게 한다. 누가 보거나 듣는 건 아닐까 저어하면서 말이다. 우습게도 입을 열어 타인에 에게 말하는 순간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비밀인데’ 하면서 비밀 이야기를 하곤 한다. 비밀을 나누면 공범이 된 듯이 두근두근하면서도 또 다른 끈끈한 감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방과 후에 학급게시판 꾸미기를 하려고 학급위원들이 남을 때면 꼭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일을 했다. 그날 학급에서 일어난 일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음악학원이나 미술학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함께 활동하던 청소년연맹이나 스카우트활동 이야기로 건너가고, 마침내는 좋아하는 이성친구 이야기로 귀결되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하루건 일주일이건 사귄다는 말을 쉽사리 하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사귄다는 표현조차 별로 하지 않던 기억이다. 어쩌면 내가 둔해서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떻든 그것만큼은 다들 쉬쉬하며 비밀스레 물어보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학생 때 만난 친구들이 순수하고 이뻤다는 말이 실감 난다. 학생 때의 비밀 이야기는 어디론가 새어나가는 일도 있지만, 그것을 약점 삼아 무기로 삼는 별로 없었다. 딱히 거리낄만한 비밀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니 학부모 모임을 하게 되었다. 동네에 있는 공립초등학교를 다니니, 한 동네에 살지만 정말 다양한 직업군과 나이 스펙트럼이 넓은 부모가 모였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하다가도 만남이 지속되면 친한 무리가 생긴다. 그러나 친해져서 나눈 사적인 대화들이 나중에 퍼져나가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처음에 우리끼리의 비밀로 이야기했을 말들이 몇 단계를 거쳐 가며 와전되었다.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이들도 생겨났다.
비밀은 말하는 순간 비밀이 아닌 것이지만, 비밀을 나눈 사이에서는 비밀로 지켜줄 때 관계가 끈끈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비밀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묻어두게 된다. 괜히 비밀을 나누었다가 관계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욕심일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