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어릴 적 엄마대신 도시락을 싸고, 혼자서 부스럭거리며 먹거리를 만들어보곤 하던 때부터.
내 기억에서 가장 선명한 것은 엄마가 구워주는 카스텔라 냄새이다. 사촌 언니 오빠들이 우리 집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안,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부엌에서 착착 계란 거품 내는 소리가 나면 곧이어 달큼하고 고소한 향이 몽글몽글 번져 나왔다. 엄마가 구워주는 카스텔라는 따뜻하고 폭신하고 또 달콤한 엄마의 맛이었다. 내 아이에게도 그런 기억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힘들고 속상한 일들이 있음에도 생각만으로도 따뜻하고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기억. 그건 햇살 좋은 부엌에서 이룰 수 있는 마법의 순간이다.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부엌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십여 년 전인데도 요리를 하면서 거실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꽤 넓은 아일랜드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쿠키를 반죽하거나 모양틀로 찍어낼 수도 있고, 미니오븐이나 믹서 같은 가전들을 늘어놓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었다. 자잘한 조리도구와 양념그릇이 오밀조밀 늘어져 있지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고 시간이 좀 흐르면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공간.
내 아이들은 나와 함께 부엌에서 성장했다. 큰아이는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요리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게 준비를 다 해두고 아이를 안고 프렌치토스트를 함께 구웠다. 아이와 함께하려고 아이가 좋아하는 물고기가 그려진 프라이팬과 그릇도 샀다. 고모가 만들어 준 무지개 물고기 인형을 오븐에 넣고서 요리하는 중이라고 손뼉을 치며 기다리기도 했다. 작은 아이도 형을 따라 질세라 참여했다.
큰 아이가 중2가 되었을 때 학교 친구들과 요리를 하는 자율동아리를 형성했다. 작은아이는 6학년이었지만, 당연히 팀원이었다. 동아리 활동이 있는 날은 친구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들었다. 나는 부엌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내주고 외출을 했다. 아이들은 메뉴를 정하고 조리법을 검색하고 재료를 구해서 온전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어떤 날은 생선요리를 하려고 생선을 샀는데, 손질이 되어있지 않다고 난감해하며 연락이 왔다. 외출한 엄마가 해 줄 수도 없고, 요리는 준비과정부터 시작이니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지 않는가. 유튜브에서 생선 손질법을 배워 깨끗이 다듬어 이용하였다. 요리 과정도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삽입하고 관련 이론들을 찾아가며 그럴듯하게 동아리 활동 보고서를 적었다. 요리를 해서 먹고 노는 듯 보여도, 사실은 요리를 통한 과학탐구활동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아이들은 요리를 멈추지 않았다. 큰 아이가 메인 요리를 재미있어하니, 작은 아이는 자연스레 베이킹과 디저트 쪽으로 눈을 돌렸다. 크리스마스에는 시커먼 고등학생들이 집안을 그득 채우며, 쿠키를 굽고, 파티용 음식들을 만들어 먹곤 했다.
큰 아이는 유학을 가고 혼자 살게 되면서 스스로 끼니를 만들어 먹는다. 형이 없어 부엌을 독차지할 수 있게 된 작은 아이는 이따금 빵이나 쿠키를 잔뜩 굽는다. 학교에 가져가 간식으로 먹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며 함께 티타임을 갖기도 한다.
부엌생활은 일상의 루틴 같은 활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맙게도 부엌은 여전히 달콤한 기억을 계속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