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by 물빛

20년 전 오늘 우린 동경으로 떠났다


일어도 짧고 영어도 짧은 둘이서 '그냥 어떻게 되겠지.'란 마음이었다. 앞으로의 일 따윈 전혀 염려하지 않으며, 남들 다 간다는 화려하고 편안한 휴양지대신 동경을 신혼여행지로 골랐다. 남편의 지인 덕분에 전통 료칸을 경험하고 가이세키 요리를 접했다. 디즈니랜드 덕후인 일본인 올케언니 덕분에, 디즈니 호텔에 묵으며 미키버스를 타고 다니며 구경을 했다. 게다가 언니의 친정집에 초대해 주셔서 진짜 일본가정집에서 어머님이 해주시는 가정식을 체험하고 돌아왔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셀 수 없는 우리의 연애는 어렵다는 롱디만으로 8년이었고, 함께 한 시간은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신혼 초기였음에도 새로운 생활을 찾아 떠나는 남편을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 없는 믿음뿐이었다. 오랜 시간 공기처럼 내 삶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행을 고민하던 때에 우릴 찾아온 둘째 덕분에 상담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진지하게 인간의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외국에 나가지 않는 대신 선택한 두 아이와의 생활. 내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내 성격도 조금 달라졌다. 우리가 만난 지 두 번째 8년이 되었을 때, 나는 학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세상살이가 단 하나만의 원인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다사다난한 살이에 어느 새부턴가는 웃을 수가 없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고, 내 힘듬은 괜찮다는 말로 포장했다. 자본주의의 미소도 잊지 않았고, 내 아이에 대한 책임감만큼은 더더욱 키워갔다. 나를 버티게 한 9할 이상은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8년이 되었을 때, 내 몸은 망가졌다.


아이들의 친구들과 함께 한 마지막 역사탐방 여행을 갔던 날,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심해서 걸을 수가 없었다. 그저 족저근막염인가 했는데, 발 아치가 무너진 것이었다. 더 이상은 구두를 신을 수 없게 되었다. 이가 아파서 밥을 씹을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악관절염이 심하게 진행되어 있었다. 자가면역질환은 손톱 밑 피부가 웃자라게 했고, 나를 만삭의 몸으로 데려갔다. 식욕이 없고 먹지도 못하는데 체중이 불어나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일련의 통증이 하나씩 늘어가던 어느 날, 내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방사선과 선생님이 내 갑상선에 있던 결절의 형태가 나빠졌다고 했다. 세침검사 결과 갑상선 유두암이었다. 수술을 하고, 칩거하고 지내는 동안,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시작한 SNS에서 함께 감정을 나누며 배운 게 있다면, 말과 글에 담긴 진심을 표현하는 법이다. 단순한 말이나 글로는 전달되지 않는 행간의 의미.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되는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추가가 될 때 비로소 서로 제대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내일부터는 네 번째 8년의 마지막 해에 들어선다. 내년에는 작은 아이가 고3이 될 테다. 그동안 약을 먹고 식이조절을 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운동을 하며 체중관리를 했다. 한동안 신혼만큼은 아니어도 조금 가벼운 상태를 유지했는데, 갱년기의 습격은 또다시 만삭의 몸을 맛보게 했다. 1년 주기로 몸이 파도를 탔다. 긴 결혼 생활 동안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행복한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몸은 마음을 짓이기기도 한다. 가끔은 아주 우울하고,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만큼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내 가족과 친구들을 보며 끊임없이 환기하려고 애쓴다. 지난 세 8년간 묻어두었던, 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표면적인 미소 위에 숨겼던 진짜 마음을 표현할 때, 비로소 정말 활짝 웃을 수 있게 된다. 조금씩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마음을 열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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