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간의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믿는 관계도 있고, 업무적으로 믿는 관계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그에 대한 믿는 구석이 있어야 관계가 유지되는 게 아닐까? 내향적인 성격 탓에 많은 이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살지는 않는 대신 내 바운더리 내에 있는 이들과는 공고한 관계를 유지하고 산다고 생각했었다.
가장 가깝다고 여기던 이들에게서 신뢰를 잃게 되면서 나는 한없이 깊은 우울로 빠져들었다. 처음엔 슬펐고 , 스스로를 탓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신뢰를 깨뜨린 그들이 잘못한 것이지.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의지할 데가 없었고, 내 세상은 끝난 것만 같아서 정말 사라지고 싶었다. 한참 어린 아이들을 보면 동굴을 파고 있을 수도 없어서, 아닌 척하느라 애써 웃음 지었다. 하지만 혼자인 시간이나 공간에서는 아무런 부피가 없는 종이인형이 된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서러움에 북받쳐 울기도 했다. 언젠가부터는 어떻게 해도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어서 스륵 잠들어있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내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시간은 흘렀다. 깊은 우울 속에서 몸은 망가져갔고, 내게는 암환자라는 이름이 하나 더 붙었다. 일상이 하나 둘 깨지면서 나는 이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 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나 분노보다, 슬프고 슬프고 슬펐다. 곁에 있는 이들이 다 가식처럼 느껴졌다. 병원에 함께 간다는 엄마도, 가장 좋은 의료진을 찾아보자던 남편도 다 허상인 것 같았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수술날짜가 잡히면서 조금씩 장막이 걷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수렁에 빠뜨린 사람에 대항해서 고소를 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았고, 소장을 접수했다. 그 사실을 상대에게 통보하면서 또 한 번 사람에게 실망을 했다. 이제 정말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다.
수술 후에는 당연하게도(?) 두문불출했다. 유일하게 완벽한 타인이면서 나를 궁금해하고 종종 안부를 물어오던 세 언니에게만 수술사실을 알렸었다. 그중 미국 언니는 온라인 활동이라도 조금 활발히 해보기를 권했다. 심리학 전공자인 그 언니는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 나도 무언가를 다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걱정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는 마음이 전해져 왔다. 언니의 온라인 친구들 중 괜찮아 보이는 이들을 골라 친구를 늘리기 시작했다. 온라인 상이지만 점점 친구수가 늘어갔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반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상이지만 대화가 통하는 이들을 몇몇 발견했다. 상황이 비슷하거나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 개그코드가 맞는 사람들, 또는 공통점이라고는 없지만 내게 관심을 갖고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이들. 나를 설명하지는 않아도 그들과 마음이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며, 실제로 만나고 싶은 이들도 생겨났다. 거의 매일 짧은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현실의 친구보가 더 가까운 느낌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었다.
부산으로 여행온다기에 첫 번째 만남을 가졌다. 동갑내기 친구인 이이는 남편과 함께 왔다. 내 아이들과 함께 내 단골집에서 만났고, 초면이지만 바로 알아보았다. 거의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 방학이 되어서 서울에 가서는 이 친구 가족과 함께 또 다른 온라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 역시 첫 만남인 게 무색하게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서로의 지역을 오갈 때 한둘씩 만나 온라인 친구가 실제친구가 되어갔다.
실친 1호와 2호는 내게 더욱 특별한 사람들이 되었다. 1호는 비슷한 연령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께 울고 웃어주었다. 2호는 개인 사정으로 부산에 자주 올 일이 있어 자주 만나게 되었다. 좋은 지인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등산과 캠핑 초보인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웃음을 강권했다. 온라인에서 보던 것과 생긴 건 똑같지만, 너무 경직되어 보인다고 했다. 매일 억지로라도 웃어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웃음을 권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멋쩍지만 셀피를 찍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는 셀피를 찍으며 자연스레 웃기 시작했다. 친구는 내 표정을 보며 어떤 경우가 더 예쁘고 잘 어울리는지 말해주었다. 그 친구를 보며 의식적으로지만 내 삶에 웃음을 더해가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친구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응하게 되었다. 나는 이들을 소울메이트라 부른다.
3년 여에 걸친 이 친구들과의 많은 대화와 함께한 활동들을 통해서 나는 조금씩 더 밝은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아직은 몸도 완전히 건강을 되찾지 못했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완결되지 않은 관계도 있지만,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 번 난 생채기는 다치기 이전의 상태로 완벽하게 돌아가진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곪고 터진 곳은 딱지가 앉고 흉터가 남기 일쑤이다. 하지만, 적절하게 소독하고 약을 바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 흉터를 최소화할 수 있다. 회복이라는 것은 깨지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함은 아니지 않나. 몸에든 마음에든 난 상처를 잘 관리해서 앞으로 살아갈 날에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가지게 하는 일 아닐까.
몇 년이 지난 아직도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때가 생각나고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 사람에 대해 깨진 신뢰는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자가치유가 되고 있었나 보다. 몇 년간의 공백이 두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에 다시 나올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 이게 치유되고 있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