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맘때이다. 몇 년간 병원 진료 후에 가던 카페가 리뉴얼을 위해서 문을 닫았다.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해서 골목을 누비다가 '번아웃'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발견했다. 이른 아침이고, 간단한 브런치를 먹을 수 있을 만한 곳이어야 했다. 검사가 있는 날은 공복으로 혈액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난 후 씬지로이드를 먹는다. 이 호르몬은 '공주'라는 별명이 있다. 다른 것과 섞이면 약효가 없어서 공복에 복용하고 한 시간 정도 후에야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다. 카페 안에서 사장님이 분주히 무언가 만드는 것이 보이기에 들어섰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하나 주문하고 앉았다. 대체 카페이름을 왜 번아웃이라고 정한 걸까? 번아웃은 사실 심리적, 정신적, 신체적 탈진상태를 의미한다. 당시의 나는 번아웃에서는 겨우 벗어났지만, 또 다른 정밀조직검사를 앞두고 조마조마한 상황이었다. 가게 내부의 1층은 아주 깔끔한 화이트톤인데, 벽에는 독특한 컬러의 동물모양의 장식을 해두었다. 음식은 딱히 독특할 것이 없었지만, 사장님은 친절했고, 머무는 동안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카페 컨셉이 이름에서 오는 힘들고 무기력한 기운을 사라지게 해주고 싶은 걸까? 한 주 뒤 진료를 보러 갔을 때 다시 한번 더 방문했다. 조금 오래 머물러야 해서 2층에 갔더니 좀 더 아늑한 느낌이었다. 대신 1층의 독특함은 없었다. 그리고, 좋아하던 언니와 연락을 하며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었다. 언니는 뇌종양을 앓고 있었는데, 상태가 나빠져 재수술을 했었다고 했다. 내 소식을 전했고, 다행히 우리 둘 다 수술 결과는 양호하지만, 여전히 위험 인자를 가지고 있어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한 번 번아웃 상태에 진입하면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미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제로스트레스 상태라는 것이 존재할까? 아닐 것이다. 여러 각도에서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이 편안해져야 나를 붙잡고 있던 긴장, 불안, 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껴주고 잘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잘 살아보려고 애쓰면서 놓쳤던 존재, 그게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후로는 카페 번아웃에 선뜻 들어가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계속 번아웃 상태에 놓여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에 찾은 카페에는 '자주 봐요. 우리, 정들게'라는 네온사인이 있는 곳이다. 마음이란 참 재미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생각과 감정이 모두 작용하여, 희한한 생성물을 내어놓곤 한다.
그때의 조직검사는 섬유선종이라 팔로우업만 하면 되는 것이라 했다. 6개월마다 정기적인 검사를 한다. 매번 크기가 커지지 않았음에, 형태가 나빠지지 않았음에 감사해 왔다. 드디어 이번 여름 검사에서 크기가 살짝 줄었다. 담당 선생님조차 활짝 웃음을 보여주셨다. 1년 후에 또 검사를 하러 가야 하겠지만, 그것만 해도 기쁜 일이다. 아! 올해는 큰 아이 입시가 끝나서 조금이라도 걱정이 줄었구나.
석 달만에 간 병원에는 그랜드피아노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던 홀에 스타벅스가 들어서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씬지로이드를 먹고, 또 한 시간 기다려야 하니 들어가 보았다. 다른 매장과 다르게, 자율배식 가능한 물이 없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충분히 식을 만큼 기다리고 있자니 높고 큰 창으로 햇살이 그득 들어와 눈이 부신다. 입원 기간 동안 잠 못 드는 비 오는 밤에 처연히 앉아서 빗소리를 듣던 곳인데, 이젠 유료화되었다. 번아웃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우울하거나 힘든 마음을 일으키는 데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