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연습하기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보다 이성적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했지만, 우리는 죽음이라는 사안을 회피하기 위해 늘 애쓰며 살아가곤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란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두려움입니다. 이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두려움이 결국 죽음이기 때문인데, 따라서 모든 두려움은 죽음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생의 본능인 에로스(eros)의 살고자 하는 집착으로부터 작동됩니다.
우리 조금은 솔직해지도록 합시다. 만약 당신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사실 죽고 싶다기보다는 지금처럼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을 뿐이지 않나요? 그러나 당신이 원하는 그 삶 역시 하나의 관념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필요로 인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원, 의사, 배우, 종업원, 은행원, 서비스업 등 다양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게 그들은 이러한 역할을 부여받은 자신을 사랑합니다. 진정한 자신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럼 제가 여기서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만약 이러한 역할을 잃어버리고 당신이라는 존재만이 남는다면, 여러분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나요? 더 나아가 최악의 상황에 치닫아 몸도 불구가 되고 빚에 허덕이며 길바닥에 나앉는다 해도 당신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당신의 삶에 더 이상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역할이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살아 숨 쉰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에로스의 삶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혹여 지나간 과거의 영광으로 삶이 괴롭다면, 죽어서 사라져 버린 과거의 영광을 받아들이세요. 사랑하는 연인과의 실연으로 우울감에 빠져있다면, 그 시절의 사랑은 죽고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다. 퀴블러 로스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늘 상실감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기회를 마주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 또한 명심하세요. 당신은 괴로운 상황을 겪을 수도 있고, 행복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또다시 비참함을 겪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탄생이 삶의 일부이듯 죽음도 삶의 일부입니다.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다음 주부터 3부가 연재됩니다. 3부에서는 내면을 치유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 다뤄집니다.
Part 2. 어둠 속, 등불 하나
※ 지속적으로 글을 다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