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통찰 - 1

by 아쿠아신



Memeto mori
(네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금 당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심리학자 빅터 프랑클이 겪었던 고통은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고통은 당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전혀 다른 결의 시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죽고자 한다면, 그전에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 말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한평생 인간의 죽음을 연구하며, '인간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책은 퀴블러 로스가 시한부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시선으로 죽음을 이해하려 시도한 최초의 삶의 통찰서입니다.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는 죽어가는 환자와 아이들이 만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정도로 죽음에 대한 폐쇄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의료계는 시한부 환자에게 그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려야 하는지, 숨겨야 하는지를 두고 팽팽한 논쟁을 벌여왔으며, 그 탓에 환자들은 아무 권리도 없는 짐짝처럼 취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연구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수많은 감정들이라는 통찰이었습니다. 사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죽음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음으로 인해 야기되는 절망감과 무력감, 혹은 사회적인 시선으로부터 받는 냉대와 무관심으로 소외감을 느끼며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실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더욱 극대화됩니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렸습니다. "비극적이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이성적으로 직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어가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죽음과 투쟁하라고 독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는 모습으로 눈 감을 권리가 있으며, 이를 위해 굳이 언어적 교류를 시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그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고,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을 수용함으로써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5단계의 과정이 있다고 보았는데, 순서대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며, 모든 사람이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Part 2. 어둠 속, 등불 하나

※ 지속적으로 글을 다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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