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그림책 작가에들에게 묻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림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림책이라는 건 사실 동화책만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르게 해석해 본다면 그림이 담긴 모든 책을 뜻하기도 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어린 시절부터 그림이 그려진 책이라면 모든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져 만화나 소설 모두를 아울러 좋아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과는 다르게 아주 어린 나이에 보던 그림책 속에는 어디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세계가 존재했다. 그곳에서는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삶의 지혜, 그리고 교훈 등 여러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에 또 다른 세계를 접하는 매체 가운데 특히나 아이이였던 내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그림책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들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강아지 똥]이라는 책은 너무 감동적이라 책이 닳도록 읽어서 글자나 내용까지 전부 외웠을 만큼 좋아했고 [안데르센 전집]들 또한 예쁜 공주님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여 그림까지 기억 남아있다.
이런 책들은 사실 어렸을 때만 읽어보고 크면서 점차 읽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뭔가 성인은 그림책을 읽는다는 게 약간 거리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또한 나의 편견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그림책을 읽는 성인 독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성인인 내가 어린아이들이 읽을법한 책이라는 편견으로 동화책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이라고 외쳐 만든 작은 변화가 현재 독자들의 마인드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최근 들어 나오는 성인들의 베스트셀러 책에 이런 동심이 가득 담긴 동화 같은 느낌의 책들이 많이 나와있지 않은가. [곰돌이 푸의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라는 책도 동화 같은 문구 하나에 큰 감동을 받는 느낌처럼 말이다. 이 책들은 그림책의 느낌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냥 내용이 더 많은 그림책의 느낌 같달까?
이렇게 직접 책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노력하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아동과 관련된 일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책과의 접점이 있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독서 지도를 시키면서 같이 책을 읽다 보면 성인인 내가 읽어내려가는 방식이나 아이들이 읽어내려가는 방식이 정말 너무나도 다르다는 걸 느낀다.
물론 성인인 나는 감동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고 어른이 동화책을 읽는 건 정말 순식간이지만 아이들은 책 속에 나와있는 그림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 모든 것을 눈에 담아내는 차이점도 있다. 그만큼 그림이 주는 시각 매체의 중요성이 느껴진달까? 실제로도 아이들은 글보다는 그림으로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참 다양한 생각을 해봤다. 혼자 마인드맵을 그려가며 아이들과 책을 통한 교육적인 목적으로도 생각해 보고 뭔가 창의적으로도 생각해 보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언젠간 나도 나만의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뭔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들은 어떻게 해서 자신의 동화책을 써 내려가는지, 창작 세계를 표현해 내고 창조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이 책을 쓴 최혜진 작가는 한국에서 그림책 작가로 일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이런 불모지에서도 꿋꿋이 그림책을 써내려 온 작가들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여 집필한 책이다.
책의 큰 주제는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의 돌파하는 힘이다. 그냥 돌파하는 힘이라기보단 '고유의 돌파성'이라 하여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만들어온 작가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책 내용은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느낌이 들도록 구성이 되어있다. 질문과 대답, 그리고 그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으로 작가의 삶을 담아낸다. 작가는 총 10명의 작가로 권윤덕, 소윤경, 이수지, 유설화, 고정순, 이지은, 유준재, 노인경, 권정민, 박연철의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느꼈던 건 그림책이 그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사실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고, 왜 이렇게 마무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이 무서운 책, 이상한 책, 웃긴 책, 슬픈 책 등등 정말 많은 그림책을 보았음에도 작가가 이 책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살펴보면서 그림책을 만들게 된 작가의 배경 이야기, 그리고 작가가 겪었던 삶 경험, 사상 등이 그대로 녹아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한 권의 그림책이 그냥 쓰인 게 아니라 작가의 영혼이 들어간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책 청소부 소소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마침 그 책을 만든 노인경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보았다. 책 청소부 소소라는 책의 그림들은 타이포그래피를 보는 것 같이 정말 빼곡히 많은 글자들로 이루어진 그림들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책을 지저분하게 읽는 습관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표현력이 너무 멋지다고 느꼈다.
또한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고 보니 아픈 몸을 가지게 된 사연이 있는 고정순 작가가 만들어 낸 동화책 가운데 하나인 [가드를 올리고]라는 책은 90%가 얻어맞는 장면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마지막에 다시 일어나 옅게 웃는 주인공을 통해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알리기도 한다.
소윤경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 행복하게 해준 동물, 식물, 곤충 등 자연에 각인된 행복했던 기억과 반대로 기르던 강아지가 뺑소니를 당하자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다친 개를 올가미에 묶어 오토바이에 매달고 질질 끌려가는 모습에 충격과 무력감을 느낀 사건을 말하며 자연스럽게 작가의 자연관이 작품에 녹아내리게 된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듯 작가의 경험들이 책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것이다.
유재준 작가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베 히로시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두 시간 강연에서 한 시간 반을 동물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강연 종료 30분 전쯤에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제 키가 큰 편인데 이렇게 두 팔을 벌려도 5m가 안 돼요 그림책의 씨앗은 이 반경 안에 있어요"라는 말을 듣자 그는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강연 내내 동물 이야기만 한 그는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면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해진 일러스트 작가였기 때문이다. 강연 내내 동물 이야기만 한 것 자체가 그의 5m 반경 안에서의 일상은 동물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일상으로 나온 그림, 그리고 이야기들이 아베 히로시라는 작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 반경 5m에 있는 나의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점점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진다. 그냥 지어내는 어떤 이야기가 아닌 나의 영혼을 담아 만들어내는 나의 이야기는 어떠할까? 언젠간 만들어 낼 나의 그림책을 이 책을 통해 상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언젠간 나에게도 질문이 온다면 내가 전달해 줄 이야기를 사유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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