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어."
"그러게 말이야. 애가 통 말을 안 하니까."
"학교에서 시험 봤다고 하던데..."
"점수를 안 알려주더라니까."
"우리 애는 시험지 받아 왔던데?"
"우리 애는 점수만 알려줬다고 하는데 말을 안 해."
모처럼 첫째를 데리러 간 학원 앞에서 학부모들이 연신 자녀의 학교 생활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여기 교사 있어요!'
말할 수도 없고, 듣고 싶지 않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진도대로라면 이거 배우고 있을 것 같네요, '
'시험지를 가정으로 보내는 선생님과 안 보내는 선생님의 차이는 성향 차이일 수도 있고 예전에 불편한 일이 있었으면 안 보낼 수도 있어요. 분실이라던가 유출이라던가 등요.'
대화를 들으며 알려주고 상담해주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지만 꾹 참을 수밖에.
"요새 우리 애 글씨 너무 못 쓰는데 좀 가르쳐줘야 하지 않나?"
"우리 애도 날림으로 쓰던데 학년 올라갈수록 더 엉망이야."
'그 정도면 학교에서도 이야기 나올 거예요. 저도 매일 알림장 간단하게라도 쓰고 글씨 체크하는데 요새 아이들이 글씨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애가 너무 하루종일 폰만 잡고 있어. 맨날 유튜브만 봐."
'학교에서 인터넷, 모바일 중독 예방 교육하고 지도하는데 하교하면 바로 휴대폰부터 켜네요. 가정에서도 눈에 불을 켜시고 규칙을 세워 같이 도와주세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내 영혼도 절반은 참여하고 있었다.
"애들 차이가 많이 난다며? 그 반 수학 어때?"
"시간 안에 문제 다 푸는데 다 못 푸는 애도 있대."
'한글 제대로 못 쓰는 친구도 있어요.'
"우리 애 글을 너무 못 써. 몇 줄 쓰고 끝~ 영상도 숏폼만 봐서 그런가 봐."
"우리 애는 드라마도 재미없대."
'맞습니다. 글쓰기는 평소에 자주 써야 실력이 늘어요.'
빠져나올 수가 없다. 좁은 대기공간에서 짧게라도 읽으려고 가져간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첫째의 학원 마치기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엉겁결에 학부모 이야기를 염탐하는 스파이가 되어버렸다. 모두들 자녀에게 관심이 많고 자녀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다.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에 대해 이해가 쉽지 않을 만큼 입장과 성향, 사회의 변화에 대한 인식 차이가 많다.
학생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자신의 노력을 돌아보니 힘이 들고, 학부모는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은 현재 학생의 모습(수준)에 관심이 많으며, 교사는 배움과 교육을 통한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하면 조금이나마 진심이 통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다르고 어다른 동상이몽에 꼬여서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있어 불편하다.
서로에게 바라는 것과 서로가 바라는 것은 언제쯤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학생의 성장과 변화가 누구의 덕이나 탓이라는 오해나 곡해 없이 그대로를 모두 편안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서 서로의 마음에 담이 쌓여가는 느낌이 든다.
나도 학부모인데. 나는 교사를 위한 스파이인가 교사와 학부모의 이중간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