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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프라인 Aug 24. 2023

그러면 사람이 피가 말라요.

중간이 제일 힘들거든요.

 소원수리.


 혹시 들어보셨나요?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 같지 않나요?


 뜻을 유추할 수는 있지만 들어보신 적 없으실 수도 있습니다. 소원수리는 군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을 막기 위해 실시했던 제도로 상급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비밀편지 제도를 말합니다.(현재는 마음의 편지라는 용어로 언어순화 변경되었습니다.)


 "사고 치지 마라."


 군입대 후 훈련소에서 자대(입대한 장병들이 실제 근무하는 부대) 가는 도중 들었던 말입니다.(기억이 오래되어 다나까 말투는 기억이 안 납니다.)


 "지난달에 한 명이 막타워에서 뛰어내렸잖아. 뛰어내리지 말고 말로 하라고."


 인솔 장교가 승용차 백미러로 뻣뻣하게 앉아 얼어있는 이등병들을 살피며 말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바리한 시기였지만 향하고 있는 부대에서 생활이 힘들어 한 군인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는 것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입대 전 훈련이 힘들면 내무반 생활이 편하고 훈련이 편하면 내무반 생활이 힘들다는데 감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동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막타워 (출처 : https://m.yna.co.kr/view/AKR20090805153700062)


 아니나 다를까 내무반에서의 생활은 무자비했습니다. 처음 내무반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데 자살 미수 사건으로 이미 홍역을 치른 선임들은 온갖 트집을 잡았습니다.


 "너 행정병 아냐? 진짜 안경 끼고 여기 온 거냐? 너 체력 좋아? 힘들면 빨리 위에다 얘기하고 꺼져. 블라블라~"


 이게 처음 인사였고, (내무반에서 같이 생활하는 군인 14명 중에 안경 낀 사람저를 제외하고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너 대학 어떻게 갔냐? 대학 간 삐~~~가 이걸 모르냐! "


 이게 주로 듣던 말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다들 대학생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나이대의 그룹에서 대학생인 사람이 거의 없을 수 있다는 것(14명 중 3명 정도가 대학생)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고참(선임병)들은 훈련부터 청소까지 온갖 일로 '조인트'까며(무릎 아래 정강이를 진짜 찹니다.;;) 갈구었습니다. 야외 훈련 강도도 만만치 않아서 3달 만에 체중 10킬로가 증가했습니다. 100일 만에 휴가를 나와 보니 상의는 맞는데 하의가 안 맞더군요.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 어느새 제 밑에도 후임이 들어왔고 이제 이등병을 벗어나 일병을 달기 직전이 되었습니다.




 "2중대 모여!"  


 취침 전 갑작스레 소집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한 장교가 군대 내 가혹행위(폭언, 폭행)로 뭐라 뭐라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금방 해산해서 내무반에 돌아가보니 고참  명이 보이지 않습니다.


 15일 유학을 갔답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15일 영창(군인 유치소)을 간 것입니다. 영창을 15일 가면 가 있는 기간만큼 15일 군복무를 더 해야 제대합니다. 제 후임 중 누군가 가혹행위를 못 버티고 소원을 빈 겁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급작스럽게 시행된 계급별 내무반.


 이등병은 이등병끼리, 병장은 병장끼리 지내라는 것이 대책이었습니다.


 지금 계급별 내무반 제도는 잘 시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20년도 더 된 그때는 차라리 처음 부대 오던 날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이 좋아 계급별로 내무반 안에서 따로 생활하라는 말이지 복도 및 공용시설(PX 매점, 세면장, 화장실, 전화박스 등)은 같이 사용해야 기 때문입니다.


 "니네 끼리 잘하고 있냐?"


 "이렇게 하니 좋냐?"


 "웃음이 나오냐?"


 "나중에 두고 보자."


 대책이라고 내놓은 며칠의 기간 동안 비아냥과 증오, 혐오의 시선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제가 쓴 것도 아니고 제 후임이 한 건데(누군지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나름대로 적응해서 후임들 거느리고(?) 편하게 지내나 했는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저는 이등병 중 제일 선임이라는 이유로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당시 처음 온 이등병들에게는 적응할 때까지 약 100일 간 스마일배지를 달아주었습니다. 실수해도 웃어주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배지가 없었습니다. 후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데 저는 웃음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15일 후, 영창 간 상병들이 돌아오고 내무반은 다시 원래대로 계급이 섞인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영창 갔던 그들이 제대할 때까지의 6개월은 26개월의 군복무기간 중 심신이 가장 피폐했던 기간이었습니다.

 



 https://news.imaeil.com/page/view/2023081016141936170


 2학기를 시작한 학교는 어수선합니다. 7,8월 동안 현재 학교 상황에 대한 수많은 소식과 매체의 보도가 있었지만 확실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민원으로 인한 교사들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내놓은 방안은 '폭탄 돌리기'로 불립니다.


 교사인 저로서도 민망합니다. 교사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이 하면 안 힘들까요. 그리고 학생과 관련된 문제나 이야기는 결국 교사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에 매개체처럼 끼인 사람은 피로감이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ㅇ학년 ㅇ반 학부모인데 그 반 코로나 걸린 애가 숨기고 학교 갔다고 애한테 얘기 들었어요. 관리 어떻게 하는 거예요!"


 작년에 교무실과 행정실로 전화한 누군가의 민원 내용입니다. 누구의 학부모인지는 밝히지 않고 온갖 짜증을 내다 끊었답니다. 행정실에서 전화받으신 분은 처음 겪는 상황에 죄송하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요새 학교 전화기는 발신번호 뜨거든요. 저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선생님, 그 반 학부모한테서 전화 왔는데 누가 코로나 걸렸는데 등교했다고 민원 왔어요. 확인 부탁드려요.'


 바로 메시지 보내신 분 전화 걸어 상황을 들었습니다.


 "번호 알려주시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학급 비상연락망에는 알려준 번호가 없었습니다. 같은 학년 다른 선생님들께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없었습니다.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ㅇ학년 ㅇ반 담임 ㅇㅇㅇ입니다. 학급 일로 전화하셨다고요."


 "네, 블라블라블라"


 한참 짜증 냈다는 연락과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였습니다. 행정실에서 알려준 민원 내용과 똑같은 말이었지만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반 학부모가 아닌 것을요. 저는 이미 반 학부모 전원과 상담을 다 마친 뒤였습니다. 제가 목소리만 듣고 어느 학생 부모인지 맞출 정도는 아니지만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 임은 확신했습니다.


"혹시 누구 학부모신가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선생님 반 학생 엄마예요."


 "코로나 걸렸는데 등교했다는 학생 누구인가요?"


 "그것도 말할 수 없어요."


 "지금 시국에 코로나 걸린 학생 왔다 가면 저희 반 학생 전원 코로나 검사받으러 가야 합니다. 등교 전 가정에서 체온 확인하고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도 발열체크 하는데 이상 있는 친구 없었거든요. 다른 의심 증상 있으면 병원 가서 검사받고 확인서 있어야 등교할 수 있는데 그냥 왔다면 저희 반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 엄청난 피해가 됩니다. 이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아이와 얼른 다시 이야기해 보시고 장난 아니고 진짜라고 말하면 바로 학교로 연락 주세요."


 "네, 수고하세요."


 끝까지 차분하게 대답하고 그분(?)은 끊으셨습니다. 그리고 추후 연락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교무실에 확인을 했는데 역시나 그 번호는 우리 학교 학부모 비상연락망에 없는 번호였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상한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 혹은 의미 없는 일이 잘못된 방법으로 사람을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제가 마음에 담고 있는 인물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국가, 제도, 법, 규칙 등은 사람이 만든 수단에 불과하다. 수단에 사람이 지배를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것이 아닐까.


 교사가 학생들을 교육을 하는 것도, 학부모가 자녀에 관심을 갖고 질의를 하는 것도 모두 행복하기 위한 수단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수단의 잘못된 사용, 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책 또 다른 어려움과 불편함, 희생을 부르는 않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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