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일로 좀 와 봐."
"어~"
며칠 째 글을 쓰다가 저장만 한 것이 몇 개인지 모른다. 좀 탄력이 붙으려고 하면 여기저기에서 부른다.
"왜?"
"이것 좀 보라고."
딱히 볼 게 없는데. 아들은 불러놓고 자기 일에 열중이다.
"뭐?"
"이거 붙인 거. 뭐 같애?"
거실 테이블 위에 색종이 뭉치가 나뒹굴고 있다.
"공룡?"
"어! ㅇㅇㅇㅇㅇㅇㅇ이야."
"어, 그래..."
"세계에서 제일 작은 공룡이 뭔지 알아?"
알았는데 까먹었다.
"음... 그게..."
"콤ㅇㅇㅇㅇㅇㅇ이야."
"어, 그래. 지난번에 들었었는데 잊어버렸네."
"아빠, 계속 봐봐."
머릿속에 생각났던 문장들이 사라져 간다.
"애들 우유 좀 줘."
"아빠, 일로와 봐. 이거 모르겠어."
"윗집 공사하는데 싸인이요."
"부동산이에요, 집주인이...."
이 사람들이 글 쓰는 것을 장난으로 아나. 아무리 수익 없고 취미라 해도 그렇지 집중되나 싶으면 부른다.
이 정도면 안 써야 하는데 쓰던 게 아까워서 노트북을 잡고 있다가 공부할 것 있다고 내어주고, 휴대폰을 잡았더니 마침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한다.
글 쓰는 흐름이 끊기고 결국 단념할 때 문득 어느 방송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신을 생각하듯 살면 인생이 편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 "성적의 신이 나를 외면했구나."
사랑하던 이와 이별했을 때, "사랑의 신이 사랑을 거두었구나."
알쓸신잡 3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가 알랭드보통의 말을 인용해서 이야기했다.
그래, 오늘은 그리스 사람들처럼 하루를 보내자.
글의 신이 나를 외면했구나.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