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춥지 않았던 2월, 종업식을 하는 국민학교 운동장 조회 시간. 조회대 위의 한 선생님께서 전교생에게 교직원 인사이동에 대해 알려주셨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여자 짝이 울었다. 다른 여자애들도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남자애가 돌아보며 물어왔다
"여자 애들 왜 우는 거야?"
"나도 몰라. 우리 담임 선생님 전근 가신대."
"전근이 뭔데?"
"나도 몰라."
그러자 울고 있던 여자애 중의 한 명이 우릴 보며 말했다.
"앞으로 못 본다고!"
하지만 몇 달 후
'선생님?'
나는앞으로볼 수 없을 거라던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어디론가 건강히 걸어가시는 모습을 외삼촌 집 근처에서 목격하였다. 그리고 이어진다른친구들의 수많은 목격담을 통해 '전근'이 '근무지의 이동'을 뜻하는 단어임을 알게 되었다.
2023 초등학교 여름방학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학교마다 날짜의 차이는 있겠지만 방학으로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다시 초등학교로의 일상이 시작된다.
2학기의 시작은 1학기와는 좀 다르다.
반의 위치나 모습, 친구들, 학급 분위기에 대해 크게 기대되거나 걱정되지 않는다. 개학날 교실문을 열면 담임선생님께서 계실 테고 친구들이 있을 거다. 재잘대는 아이들과 듣는 아이들 사이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언제 방학이었냐는 듯 바로 친구들의 대화 속으로 뛰어들어 반의 분위기에 적응을 할 테다.
20여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안녕하세요."
8월에 20여 명의 학생과 교사는 서로 첫인사를 나누고 소개를 시작할 것이다. 왜 다시 서로 소개를 시작해야 하는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교실 안에 있을까. 눈치 없는 1학년이 말을 꺼내기에도, 새로 반을 맡은 담임교사에게도 그 상황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2학기 휴직 예정 교사를 담임교사로 임명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사전에 그 이유를 모두에게 알리고 인계 준비도 한다.
"1학기 때 담임을 맡으셨던 ㅇㅇㅇ선생님께서는 출산/퇴직/수술 등으로 인해 2학기에는 선생님이 여러분의 담임 선생님으로 여러분과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있어요. 여름방학 날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선생님 아들 낳으셨대요, 딸 낳으셨대요?"
"수술 잘 되셨대요?"
등이 이런 경우 2학기 개학날 이루어지는 대화이다.
하지만 위의 학급에서는 이런 대화가 금기시될 것 같다.
어제 해당학교학부모에 대한기사가 나왔다.어떻게 진행이 될지 오리무중이다.
지금 당장 걱정인 건 학교 그 자체다.
교사 유족과 일부 학부모의 분쟁 가운데 낀 새 담임교사와 해당업무를 맡을 교사, 그리고 죽음을 알게 된 동료교사와 전교 학생들. 그리고 해당 반의 어린 1학년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은 2학기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국방부 시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이들의 시간도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겪었던 사건을, 장소를, 사람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오래전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후 추모하기 위해 현장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분명 여름이었음에도 장소에 들어섰을 때 느껴진 서늘함은 일반적인 냉방 장치들로 인한 효과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군대까지 제대한 후 무서울 것 없었던 그 시절에도 추모하는 순간순간 느껴졌던 형용할 수 없는 그 느낌은 아직도 떠올리면 미처 지우지 못했던 손자국의 장면과 함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학생들이 차라리 잊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없었던 일처럼 8살의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6년을 더 보내야 하는 학생들이 1학년 때 잘못 내려진 닻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이 없게, 그 학생들에게서만은 그 사건이 마음에서 사라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