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이프라인 Sep 12. 2023

지도 앱(내비)을 삭제하면 큰일이 날까

의외로 별일 없을지도.

  그녀의 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 의견을 내지, 거역하지도 않는다.


 "500미터 앞에서 잠실역 방면 좌회전입니다!"


 분명히 다음 옆 길이 평소 빠른 길임을 아는데도 나는 운전대를 좌로 돌린다.


 '사고가 있거나 오늘따라 차가 막히거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


 예전에 가끔 의 말을 거역하는 만용을 부렸을 때 숨 막힐 정도로 차로 빼곡 도로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 허송세월을 냈다. 오늘도 나는 내비 시간에 맞게 정확히 도착을 했다.




 인생에서 세 여자(엄마, 아내, 내비)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운전자가 내비의 말을 안 듣고 마음대로 운전한다면 차 안에는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왜 내비가 가라는 데로 안 가!"


 "(도착) 시간이 늦어지잖아."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마음대로 하니까 맨날 그 모양이지."


 제삼자의 입장에서 상상하고 있노라면 좌불안석의 풍경이다. 왜 그들은 운전자를 타박할까. 아마 그는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지름길을 알고 있을 수 있다. '내 말이 맞잖아!'를 외치며 그 길을 신나게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혼자 일 때다. 대개 그런 일은 같이 사람 없이 혼자 운전할 때만 이루어진다. 항상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그 길은 꼭 막힌다. 그래서 그는 매번 말을 못 듣는 내비양에게만 으스대며 뽐낸다.



 

 "내비 없이 어떻게 길을 찾아요?"


 "한 번 생각해 봐. 내비가 생긴 건 오래되지 않았어. 자동차가 먼저 나왔고 한참 후에 내비게이션이 생겼어."


 "내비 없이 어떻게 가지? 지도 들고 찾았나?"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잘 안 되는 일을 나는 기억한다.


 아버지는 안전운전을 위해 항상 큰길로 운전하시다 목적지 근처에서 서행하셨다. 옆에 앉으신 어머니는 목적지에서 가장 익숙한 가게를 찾아 두리번거리셨다. 뒷자리에 앉은 우리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열심히 기억을 떠올려 풍경 조각들을 맞추어갔다.


 큰길 신호등에서 우회전한 뒤 나오는 세 번째 골목에서 슈퍼를 끼고 우회전. 공터가 나올 때까지 직진을 한 뒤 공터에 주차를 하고 바로 왼쪽에 있는 빨간색 벽돌의 이층 주택 검은색 철문 앞으로 가 벨을 누른다. '지이익' 하는 기계음과 함께 문이 저절로 조금 열리고 낯익은 목소리들이 서로 묻는다.


 "누구세요?", "왔어?"


 "좀 늦었어요."


 "아냐, 일찍 왔어. 어여 들어와. 다들 기다리고 있어."


 "어서 와! 안녕하세요!"


 그때는 그렇게 여러 명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한 마음으로 운전을 했다. 도착하면 서로에게 '고생했다' 격려도 하고 '누구 덕분에 길을 찾았다' 칭찬도 했다. 쉽게 갈 길을 어렵게 가고 지금은 하지 않을, 불필요한 말을 주고받았다.




 이제는 출발 전 앱을 통해 걸리는 시간을 확인하고 경로를 대충 살핀다. 출발과 동시에 화면에 도착 예정시각이 뜨고 앞만 보며 도로를 달린다. 풍경에 아랑곳없이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안내하는 방향에 따라 운전대를 돌리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슈퍼마켓 등의 가게 위치나 신호등에서 몇 번째 골목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운전자 이외에 사람들은 편안히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된다. 편리한 세상이다.


 "여기 조심해야 해. 천천히 가. 사고 많이 일어나."


 라는 말은


 "300미터 앞 사고다발지역입니다."


 말로 대체되었고


 "여기서 옆 차선으로 들어. 쪼끔 있다가 좌회전해야 해."


 라는 말은


 "잠시 후 선릉역 방면 좌회전입니다. 2차로를 이용하세요."


 라는 말로 대신한다.


 "여기서는 어떻게 가더라?"


 라는 말은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라는 문장으로,


 "고생했어. 덕분에 잘 왔네."


 라는 말은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라는 멘트로 마무리된다.


 똑같이 방향을 알려주고 운전을 도와주는데 어딘가 허전하다. 마치 이미 짜인 루트를 당연히 잘 수행해 낸 기분이다.


 가끔은 내비를 끄고 운전을 하고 싶다. 어릴 적 아버지의 서툰 첫 운전처럼, 교회 끝나면 근처라고 데려다주시던 한 집사님의 운전처럼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고 말을 섞는 모습이 그립다. 옛 기억을 곱씹게 되는 가을이라 그런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풍경, 같은 환경을 만든다 해도 다른 모습이 연출될 상황이기에 어릴 적 아련한 운전에 대한 추억이 더욱 그립게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년의 삶을 꿈꾼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