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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프라인 Sep 06. 2023

노년의 삶을 꿈꾼다는 것

이것도 축복

...(중략) 자식들에게는 7할의 애정과 3할의 소홀함이 담긴 대접을 받으며 연금생활을 누린다. 일광욕실에 커다란 안락의자를 놓고, 식사하라고 말을 걸지 않는 한 마치 의자 일부가 된 것처럼 조용히 책을 읽는다. 매일, 매일.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어느 날 밖에서 놀던 손녀가 일광욕실 입구에서 안으로 공을 던진다. 공은 노인의 발치에 굴러간다. 여느 때 같으면 느릿한 동작으로 공을 주워주던 할아버지가 손녀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움직이질 않는다. 달려와 공을 주워 든 손녀는 아래쪽에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불평을 늘어놓으려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다.


 "할아버지......?"


 대답은 없으며, 노인의 잠에 빠진 듯한 얼굴을 햇빛이 비스듬하게 비춘다. 손녀는 공을 끌어안은 채 거실로 뛰어가 큰 소리로 보고한다.


 "아빠, 엄마, 할아버지가 이상해!"


 그 목소리가 멀어져 가는 가운데, 노인은 아직도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 영원한 정적이 노인의 얼굴을 바다처럼 재우기 시작한다......


 그런 죽음이야말로 양 웬리에게 어울린다고 프레데리카는 생각했다. 그것은 확신이라기보다는 기시감과 함께 내다보는 현실 풍경이었다.


  -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은영전 중에서 -




 노년에 책을 읽다 의자에서 자연스레 눈을 감고 죽음 맞이하 평안을 적잖은 사람이 바랍니다.


 점점 늘어가는 나이,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


 피할 수 없다면 멋지게,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힘들지 않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바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해서 탄생한 것이 아니듯이 죽음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운이 좋다면 바라던 모습에 가깝게 그를 맞이할 테고, 운이 없다면 원하지 않던 장소와 시간,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을 나이에 예상치 못하게 그를 맞이하게 됩니다.




 최근 3명의 교사가 죽었습니다.


 20대, 40대, 60대. 세 명 모두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들은 어떤 노년을 꿈꾸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부가


 자녀와


 자녀의 자녀들과


 여행을 가고,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혹은 노년임에도 스스로를 아직 늙지 않았다며 건재함을, 살아있음을 보여주겠다고 매일 운동 열심히 하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막연하게 자신의 노년 삶이 행복할 거라 꾸지만 지금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 것 같습니다. 마치 학생들이 입시 이후 행복한 을 꿈꾸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요. 렇게 계속 삶을 살아가다 노년에 다다르기 전에 비극으로 삶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여러분 먼 훗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며 '그땐 그랬었지.'를 말하는 노년의 삶을 꿈꾸 적이 있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있다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나누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서로 부족한 글의 약점을 잡기도, 잡히기도 하고 다른 의견도 들어가며 티격태격하는 현재의 감정을 오롯이 안아 행복하다 치환하여 보세요.


 지금 그 모습이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꿈꾸었던 삶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20대의 젊음의 향기, 40대의 사회에서의 자신감과 원숙함, 60대의 인생 2막을 맞이하는 즐거움, 위의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습니다.




 세상에는 려지지 못 많은 이야기가 흐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미처 누군가에게조차 전해지지도 못하고 땅 속 깊숙이 힌 채 끝나버린 안타까운 이야기. 현재 진행형인 슬픔과 아픔, 보여줄 수 없는 남모를 고독과 끝없이 이어지는 좌절 아무렇지 않은 척 가리고 있는 가면무도회 이야기. 너무나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고 파도처럼 다가왔다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는 물거품이야기 등


 이 모든 이야기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끝!' 이런 결말을 맞이하기에 세상 호락호락하지 않나 봅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한 명 한 명이 라디오에서 들었던 '오늘도 해피엔딩'을 외치며 살아가기를 꿈꾸어 봅니다. 한껏 푸른 잔디밭 위 의자에서 '왕년에 말이야'를 침 튀기며 말하고 아직 정정하다 하는 노년을 맞이하길 꿈꾸어봅니다.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쁘고 즐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며 오후 시간 보내기를 꿈꾸어 봅니다.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 모두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노년의 삶이 선택된 일부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닌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소년, 소녀니까요. 꿈을 꿀 수 있는 한 소 아닌가요? 저와 여러분이 꾸는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꿈입니다. 이루어야만 하는 꿈입니다. 그리고 이런 노년의 모습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내가 만나는 내 옆의 사람들이 오늘 하루도, 내일도 항상 해피엔딩으로 마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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