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으로 살기 쉽지 않습니다.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수업 내용은 원의 성질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원은 면 위의 일정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을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다루었으니 수업이 끝인가요?(웃음)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원의 정의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냥 예쁜 동그란 모양을 원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멈춥니다. 조금 성장한 학생들에게는 원의 성질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정의를 이해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정의는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배우는 원의 성질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의 지름은 원안에서 가장 긴 선분이며 무수히 많다. 원의 지름은 원의 중심을 지나며 원을 똑같이 둘로 나눈다.'
수학적인 내용은 이게 전부입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욱 복잡한 계산들이 이어지겠지만 그것은 차후의 문제이고 오늘은 원의 정의와 성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원의 정의에서 처음에 등장하는 '일정한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원의 중심이라고 합니다. 원의 중심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요? 원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심을 잘 잡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듣습니다. 마음이 여리거나 우유부단한 사람뿐만 아니라 공부를 많이 했거나 잘해서 똑똑한 사람에게도,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에게도, 남녀노소 상하지위고하 관계없이 중심을 잘 잡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중심을 잘 잡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친분이 모두가 같지 않고 관계가 모두 다릅니다. 가정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의 차이가 있고 부모인 동시에 자식인 경우도 합니다. 다른 사람과 가족이 되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사회에서는 어떻습니까? 내가 을인 경우가 많지만(갑인 경우뿐이라면 부럽습니다...) 갑인 경우도 존재합니다. 상사이기도 하면서 부하직원인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어울릴 때 분위기에 맞춰 상하좌우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같은 거리'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너무 가까워 상처받기 쉬운 거리, 너무 멀어 부탁하거나 할 말이 있어도 말을 걸기 어려운 거리를 조절해 심리적으로 같은 '편안한 거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의 성질 중 이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난 정이 돌 맞는다'는 어른들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데모하지 마라, 앞서 나서지 마라, 차분하게 생각하고 자만하지 마라, 항상 겸손하게 행동하라 등 예전에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조금 다릅니다. 남들보다 개성 있어야 하고, 튀어야 하고, 남들 앞에 보이는 모습을 상당히 신경 써야 합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움켜잡거나 가로채갈 수 있고 뒤쳐지기 십상입니다. 사람들 마음에 어필하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맞나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나서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지고 부담이 됩니다. 알고 보니 허풍이 세고 빈 껍데기 같은 사람이어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타인과의 거리를 조절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순식간에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와 나를 흔들어 놓기도 하고 어느 때는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불가항력 같아 보이지만 원처럼 둥글둥글하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같은 거리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노력이 필요하죠.
원의 정의 마지막에는 집합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위의 거리 조절이 불가항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집합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집합은 특정 조건에 맞는 원소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특정 조건은 여러분이 설정하기 나름입니다. 각자가 편안할 수 있는 조건과 거리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어떤 분은 자주 보고, 자주 이야기하고, 취미가 같아야 편안하게 느끼실 거고, 어떤 분은 어쩌다 한 번 드물게 보고, 한 번 볼 때 깊게 이야기하고 다른 취미나 분야를 이야기할 때 흥미를 느끼시기도 하실 겁니다.
이러한 사람 한 명으로는 원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점이 여러 개가 모여야 원이 만들어지듯이 혼자, 둘로는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청하여 원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집합이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도형은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은 무수히 많은 점들의 집합입니다. 우리 사회도 역시 무수히 많은 한 사람 한 사람 점들이 모여 만든 집합입니다. 그중에서 여러분 중심에 맞는 편안한 거리의 점을 찾고 이어가세요.
정리하겠습니다.
원은 면 위의 일정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오늘 하루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 중심에서 편안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잘 유지하고 계신가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행복하기 위해 원처럼 둥글게 사는 법을 연습해 봅시다. 오늘은 저도 퇴근하면서 오랜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봐야겠습니다.
수업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