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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프라인 Nov 28. 2023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색깔을!(수업)

글 쓰는 사람은 색과 향기를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수업의 내용을 말씀드리기 전에 수업의 소재인 레미 쿠르종의 '진짜 투명 인간'이라는 책의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주인공인 에밀은 앞이 보이지 않는 피아노 조율사 블링크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서 아저씨에게 색을 알려주기 위해 애를 씁니다.


 ['가장 초록색인 것은 맨발로 걸을 때 발가락 사이로 살살 삐져나오는 촉촉한 풀잎이에요.

 가장 붉은색인 것은 할아버지 밭에서 나는 토마토 맛이에요.

 가장 푸른색인 것은 옆집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것이에요.

 가장 흰 것은 여름에 푹 자고 열 시쯤에 일어났을 때예요.'


 에밀은 블링크 아저씨에게 붉은색을 알려주기 위해 할아버지네 토마토를 가져갑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말로 전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취향과 선호가 같더라도 '일치'라는 단어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서로가 비슷하게 생각하려고 사고를 확장하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는 있겠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블링크아저씨에게 색을 알려주겠다는 에밀의 생각얼핏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보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 색을 알려주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밀과 블링크 아저씨는 서로 색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며 친분을 쌓아갑니다. 그들은 글과 음악, 사물로 서로의 각을 공유합니다. 시각을 청각과 촉각, 미각으로 이해하는 세계라니 놀랍지 않나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기호입니다.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로 나타냅니다. 우리는 까만 기호를 보고 머릿속에 글자가 아닌 그림을 그립니다.


 '바다'라는 글자를 보면 머릿속에 '바다'라는 글자가 새겨지는 곳이 아니라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모래사장 쪽으로 와 하얗게 물방울로 부서져 버리는 파도가 떠오릅니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발이 파묻혀 걷기에 조금 불편함이 느껴지지만 보드라운 감촉이 연인과 함께 하기 좋은 모래사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모래사장'을 떠올리면 그곳에서 열심히 구멍을 파고 있는 아이도 생각나지요.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보다'에는 오감으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시각적인 기억에만 의존해 건조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오감을 다 표현해 다시 써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함께 남해안의 해수욕장에 놀러 간 기억에 대해 쓴다면,....... 해초가 종아리에 미끈거리며 감기고 수영을 하며 들이킨 바닷물은 엄청나게 짰다...... (중략)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시각만 이용해서 글을 쓸 때보다 훨씬 깊게 그때의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실 세계를 오감으로 느끼는 것과 달리 글쓰기 세계에서는 글로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흰 바탕에 검은색 글자. 간간이 삽화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검은색 시각 기호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에는 글자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표현됩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모습과 장면을 기호로 나타내고 우리는 그것을 해독해 머릿속에 그려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시각을 넘어 청각, 미각, 후각마저 우리는 기호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까만' 기호로 마음 주고받습니다. 정말 고등 문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물처럼 소리나 몸짓이 아닌 기호로 다양한 색과 소리, 맛과 모양,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는 이 어려운 과정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우고 연습합니다.


 이 이상의 표현방법을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게 사용하는 언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어렵고 복잡한 사고 과정을 거칩니다. 입에서, 손에서 나오는 즉시 뇌로 신호가 들어가 머릿속에서 그 뜻이 구현되어 이해하는 과정.


 언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이만큼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수단을 찾아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휴, 답답해."


 "쟤 왜 저래?"


 "이해가 안 된다."


 이런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앞서도 말했듯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라는 추상화된 기호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생각과 느낌이 다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같은 말이라도 어투와 문체에 따라 전해지는 느낌은 다릅니다.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속담은 단순히 단어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뜻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기호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대의 마음까지 다가갈 수 있을까요. 동물마다 식물마다 시각적인 형태의 특징뿐만 아니라 고유의 색과 향, 채취가 있듯 사람마다 말과 글에서 색과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블링크아저씨에게 에밀의 말과 글은 어떤 색과 향기일까요. 그리고 저나 여러분의 말과 글은 독자들에게 어떤 색과 향기일까요.


 이야기를 접하고 저는 어떤 색을 전달하고 싶은지 어떤 향을 뿜어내고 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많은 책과 글을 접할수록 부족함을 느낍니다. 주제나 목표, 색과 향에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위나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제가 나타내고 싶은 고유한 색과 향을 나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분이 쓰는 말과 글에서 여러분 고유의 색과 향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앞을 볼 수 없는 블링크 아저씨에게 마음을 전달했던 에밀과 같이 여러분의 마음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수업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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