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는(며칠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네요.)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해님의 부모님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생활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몸이 갑작스럽게 불편해지셔서 병원을 다니셔야 하는데 많은 가족들 중 저희 집으로 오신다고 하셔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여러 가족 중 가장 자주 찾아뵙기도 했고 여행도 많이 모시고 가서 대하기에 마음이 편해 오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또한 오시면 가장 불편하실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집들이 다들 방 개수도 많고 널찍하니 공간구조도 잘 되어있으며 화장실도 집집마다 2개 이상인데 다 기준 이하인 집으로 오시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지요.
내드릴 방이 없어 안방을 쓰시라고 해님과 같이 여러 번 이야기를 드렸지만 한사코 거절하시고 거실에서 주무시고 생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좁은 공간에서 여러 명이 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해님의 부모님께서도 본인들의 방식 그대로 생활하다 보니 정리, 청소, 시간 관리 등에서 혼선이 이어졌습니다.
해님은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도 다니고 일도 보아야 해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아이들 케어와 해님의 요청, 평소보다 더 밀려드는 집안일에(식구가 늘어나니 당연한 것이겠죠.,) 제 머릿속은 터져버릴 것 같았죠.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마치고 거의 매일 조퇴를 하여 집에 와 정신을 차려보면 잘 시각이 지나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님의 부모님께서 낯빛이 너무 안 좋으셨기에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전에 뵈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사람 같았거든요.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 보였습니다.
최대한 편하게 지내실 수 있게 해 드려야겠다.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려야겠다.
이런 생각이 뵙자마자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생활방식을 맞춰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생활을 도와드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드시는 음식도 기준이 명확하셨습니다.
1. 가급적 그날 한 음식일 것.
2. 반찬용기에 담지 않고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릴
3. 밥은 막 지은 밥일 것.
4. 고기나 생선 중 하나는 반드시 있고 나물과 국이 있을 것.
위가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대놓고 강요하시지는 않지만 해님의 어머님께서 이를 지키려고 하시니 도와드리다 보면 주방 환경이 달라 결국 누가 음식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계속 집에만 계시기 답답하여 외식을 갈 때에도
1. 식당이 청결할 것.
2. 비싸도 맛있을 것.
3. 자리가 다른 테이블과 거리가 있을 것.
여기에 추가로 계단이 많거나 걸어서 이동 거리가 먼 곳은 피할 것.
등의 외식 기준을 갖고 계셔서 맞는 곳을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처음 오셨을 때는 여러 곳을 갈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선택지가 줄어들고 주말에는 예약도 어렵다 보니 먼저 가서 오랜 시간 대기하여야 되는 일이 자꾸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웨이팅 시간에는 문득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힘들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부모님 일에는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자식 된 도리지.'
라고 생각했으나 일하고 애들만 돌보며 자유롭게(?) 지내던 방식에 부모님도 맞춰 드리며 생활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전부터 해님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에 대해 좋아하면서도 미안해하면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면 '자식보다 부모님과 보낼 날이 많지 않다', '여행도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시겠냐'며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며칠 동안만 같이 생활하기에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웨이팅 시간을 보낸 후에 입장 시각에 맞추어 걸어오는 가족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생 많았네."
"욕봤어."
연신 말씀하시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뵈니 잡생각들이 마음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혈색 좋아지셨네. 그 집에서 잘 지내셨나 봐. 오늘도 그렇고 제부 고생 많았어요."
"아니에요, 해님이 고생했죠."
"정말 별의별 거 다 먹어봤네. 맨날 잔칫집 마냥 먹었어."
"병원 처음 갈 때 보다 훨씬 나아졌지."
주말이라고 오래간만에 해님의 여러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해님 부모님께서 말씀하시자 아까 한 생각이 죄송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머리로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알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로만 내뱉었던 삶은 아니었는지 부끄러웠습니다.
여러 생각이 듭니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말이나 행동에서 순간의 기분에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혹은 제가 지쳐 먼저 쓰러지거나 못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을지.
'고생이 많아. 미안하고 고마워.'
매일 이렇게 말하는 해님에게 전 계속 잘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요? 기대 때문에 잘하는 것은 진정한 공경은 맞을까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안고 잠드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