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위 감독,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2000년 작 화양연화가 2021년 리마스터링 되어 재개봉하였다. 21년이 된 영화가 리마스터링 되었다는 건 그 이야기와 화면이 21년 현재에도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빛 바라지 않는 가치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무엇이 영화 '화양연화'를 클래식으로 만드는가. '화양연화'의 플롯은 단순하다. 두 부부가 우연히 같은 건물의 방에 세를 들어왔고, 서로의 아내와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안 두 사람이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다 남자는 떠나며 둘의 관계는 끝난다. 이 단순한 플롯은 정확하게 불륜을 향한다. 불륜. 인류 역사에서 결혼이 제도화된 이후로 가장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소재. '화양연화'는 그 불륜을 이렇게 보여준다. 花樣年華(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말이다. '화양연화'는 속 불륜은 죄스러운 행위가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하나의 감정이자 추억이다. 물론 이런 말이 불륜 행위를 정당화시킬 순 없다. '화양연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려는, 그리고 그런 생각을 들게 하는 영화가 아님을 잘 알 것이다. '화양연화'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죄 이전의 ‘감정’이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이 영화의 남다른 자제력이다.
이 영화가 무얼 보여주지 않는지, 무얼 보여주는지에 주목한다면 왕가위 감독의 자제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영화는 소려진(장만옥 역)네 부부와 주모운(양조위 역)네 부부가 같은 날 같은 건물에 이사를 오면서 시작한다. 소려진의 남편은 출장이 잦고, 주모운의 아내는 항상 늦게 퇴근한다는 것만 뺀다면 겉으로 보기에 두 부부는 전혀 문제없어 보인다.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영화는 의도적으로 소려진의 남편과 주모운의 아내를 비추지 않는다. 즉 우리는 단 한 번도 두 부부가 어떤 모습으로 같이 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이 영화 속에서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불륜을 소재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주목하는 건 아직 들키지 않은 불륜의 아슬아슬함, 그리고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오는 갈등과 파국이다. 하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두 사람의 등장을 자제하며 그러한 불필요한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불륜의 죄의식, 그리고 이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의 감정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몫은 무엇인가. 소려진과 주모운의 감정이다. 영화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두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게끔 만든다. 바로 영화의 ost와 화면 프레임, 그리고 양조위와 장만옥이라는 명배우들이다. 소려진과 주모운. 두 사람은 외롭다. 그 사실은 아직 두 사람이 어떤 캐릭터인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인 영화의 초반부터 알 수 있다. 바로 영화의 메인 ost 'Yumeji's Theme'가 나오는 씬이다. 화양연화의 톤은 전반적으로 아주 차분하고 조용하다. 두 부부가 동시에 이사 오는 초반의 장면도 북적북적 은 하지만 소려진과 주모운은 차분해 보인다. 그러다 갑작스레 'Yumeji's Theme'가 흘러나오며 장면에는 슬로우가 걸리고 천천히 두 사람이 마주치며 지나간다. 한마디 말도 없이. 하지만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의 감정, 외로움이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 언제나 외로움은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니까.
외로운 두 사람은 그 외로움이 기분 탓이 아녔음을 알게 된다. 오다가다 마주치며 인사만 하던 사이인 두 사람은 우연히 서로의 아내와 남편이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같은 상황, 같은 외로움을 가진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한다. 은밀하게. 하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으며. 왕가위 감독은 그런 둘의 감정을 따라가기에 가장 효과적인 화면을 이용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비슷한 프레임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 문, 혹은 어떤 무언가가 프레임에 걸치며 계속해서 답답하게 인물을 비춘다. 마치 벽 뒤에서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처럼 말이다.
영화엔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이 전혀 나오지 않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며 은밀한 긴장감을 느낀다. 바로 그 프레임 덕분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벽과 문 뒤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는 남녀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보다 집중되는 일은 많지 않다.
택시의 조수석이 걸쳐 보이는건 지극히 의도적이다. 마치 조수석에서 두사람의 모습을 몃보는 듯한 기분
그 은밀한 만남 속에서 주운모는 둘을 위한 도피처를 만든다. 바로 글쓰기이다. 주운모는 어릴 적 꿈을 이루고 싶다며 무협지를 쓰겠다고 한다. 그리고 주운모와 마찬가지로 무협지를 좋아하는 소려진에게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가자며 자신의 방으로 소려진을 부른다. 사람들의 시선과 양심의 가책, 그리고 커져만가는 주운모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소려진에게 무협지는 그럴싸한 핑계이다. 그 만남의 과정에서 양가위 감독의 자제력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만남은 은밀하지만 그 과정 속엔 잠자리도, 키스도, 포옹도, 심지어는 손을 잡는 것조차 없다. 스킨십은 딱 한번,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주운모가 소려진의 손등에 살포시 손을 얹는 장면뿐이다. 그마저도 소려진이 슬며시 손을 뺐지만. 그 스킨십 장면은 두 사람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주운모를 연기하는 양조위의 이미지는 연약해 보인다. 어딘가 왜소해 보이고 외로움이 가득 담긴 양조위의 두 눈은 모성애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주운모는 늘 천천히 조심스레 소려진에게 먼저 다가간다. 그리고 우직하게 항상 그 자리에서 소려진을 기다린다. 그에 비해 소려진을 연기하는 장만옥의 이미지는 씩씩하고 강하다. 짙은 눈썹에 단정한 단발머리, 큰 키, 그리고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몸에 붙는 화려한 치파오는 소려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부적절한 관계와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몹시 흔들린다.
왕조위는 연약해보이지만 단단하다. 장만옥은 강인해보이지만 연약하다. 너무 좋은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
만남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비 오는 밤. 담벼락에서 비를 피하던 소려진에게 주운모가 다가가 같이 우산을 쓰고 가자고 한다. 하지만 소문이 무서운 소려진은 그런 주운모의 배려를 거절한다. 같이 우산을 쓰고 돌아갈 수도 없는 사이임을 직시한 주운모. 긴 고민 끝에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전근을 결심하고 그 사실을 소려진에게 알린다. 그리고 소려진에게 미리 헤어짐을 연습하자며 미련 없이 인사하고 떠나는 연습을 한다. 소려진은 애써 차분하게 인사를 해본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없다. 단 한 번의 스킨십도, 감정표현도 하지 않고 차분함을 연기하던 소려진은 그제야 주운 모의 품에 안겨 펑펑 운다.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 그리고 늘 우직하게 그 자리에 있던 주운모는 그런 소려진을 남겨두고 결국 싱가포르로 떠나게 된다.
소려진과 주운모가 헤어지는 후반부로 넘어가며 영화의 테마 ost는 'Yumeji's Theme'에서 Nat King Cole의 팝송 'Quizas, Quizas, Quizas' 로 바뀐다. 'Yumeji's Theme'는 갑작스레 찾아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음악이다. 그에 반해 'Quizas, Quizas, Quizas'는 은은하게 평생을 따라다니는 미련에 대한 노래이다. 그렇게 그들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미련 속에서 소려진은 참지 못하고 싱가포르로 찾아간다. 하지만 주운모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남은 것은 립스틱 뭍은 담배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6년 후. 주운모는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 소려진의 행방을 묻는다. 하지만 전에 살던 사람은 떠났고 애엄마와 아이 한 명만 같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운모는 쓴웃음을 지으며 집을 떠난다. 그 아이의 엄마가 소려진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모르죠? 옛날엔 무언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했다고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싱가포르로 떠난 주운모가 친구와 술을 마시며 한 대사 캄보디아로 출장을 떠나 앙코르와트를 방문한 주운모. 그는 자신이 한 말과 다르게 앙코르와트 어딘가 구멍이 있는 돌벽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그리고 진흙으로 그 구멍을 봉하고 앙코르와트를 떠난다. 나무와는 달리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도 낡기만 할 뿐 영원히 그 자리에 서있는 돌벽.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절제했기에 아름다웠고 헤어졌기에 기억에 남을 수 있던 이야기 '화양연화'. 영화는 위의 문장과 함께 막을 내린다. 헤어짐으로 끝났기에 풍경이 된 둘의 이야기는 앙코르와트와 함께 영원히 남을 것이다. 다만 먼지 낀 창틀 뒤 풍경처럼 뿌옇게 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