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생각한다. 저번 주에 든 무게가 90kg. 그 무게를 들었을 때 어땠지? 빈 바벨이 20kg. 한쪽에 20kg 원판과 15kg원판 하나씩 해서 양쪽에 70kg. 총 90kg의 바벨을 등에 짊어졌을 때. 그리고 그 상태로 엉덩이가 골반 아래까지 내려가게 앉았을 때. 전신의 근육 어느 한 군데 빠짐없이 타이트 해진 상태에서 활시위처럼 팽팽해진 둔근과 햄스트링, 그 햄스트링과 둔근이 수축하며 바벨을 수직으로 들어 올릴 때. 그때. 꽉 깨문 치아 때문에 턱은 아려오고 눈알은 튀어나올 것 같던 그때. 3초 간의 기나긴 수축 끝에 바벨을 들고일어나 짧은 호흡을 강하게 내쉰 뒤 다시 제자리에 걸쳐놓던 그때. 고행 끝에 5개 5세트를 마쳤던 그때. 두 번은 못 들 것 같다고 여겼던 그때.
눈을 뜨고 바벨 앞으로 걸어간다. 바벨의 양쪽을 다시 살핀다. 한쪽에 꽂혀진 20kg 원판과 15kg 원판, 그리고 1.25kg 원판. 한쪽에 36.5kg 양쪽에 72.5kg. 빈 바벨 20kg까지 총 92.5kg. 저번 주보다 2.5kg 많은 무게. 정확하다. 망설여지는 발걸음. 쉬는 시간 2분에서 멈춰있는 타이머가 나를 재촉한다. 저번 주의 나를 넘어서야 하는 순간. 숨을 들이마신 후 크게 내쉰 후 바벨 밑으로 몸을 박는다. 등. 등을 견고하고 더 견고하게 만든다. 모두가 알고 있듯 스쿼트는 하체 운동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쿼트에서 견고한 등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치 돈을 모으기 위해선 버는 것보다 안 쓰는 게 중요하듯, 머리를 쓰는 공부에서 체력이 중요하듯. 견고한 등은 하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그다음 복압. 숨을 잔뜩 들이마셔 코어를 단단하게 잠근다. 내 몸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건 허리일 것이다. 하체 근육 따위가 내 허리보다 소중할 순 없다. 모든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소중한 허리를 보호해주는 것은 복압으로 단단히 잠긴 코어이다. 가슴을 활짝 열고 코어에 숨을 가득 채운다. 이보다 더 단단해질 수 없다면 이제는 바벨을 랙(바벨 거치대)에서 들어 올릴 때이다. 92.5kg의 무게가 내 몸에 온전히 실린다. 무겁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무겁다. 하지만 나는 안다. 무겁지 않으면 그건 스쿼트가 아니다. 스쿼트는 무거워야 한다. 힘들어야 한다. 전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꽉 다문 입에 양 턱이 저려야 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무겁다는 생각을 즉시 머릿속에서 지운다. 생각이 많으면 고통뿐인 스쿼트를 해낼 수 없다. 내가 해야 할 생각은 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다. 그저 내려갔다 올라오면 그만이다.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입을 앙다문다. 견고한 등을 믿는다. 그리고 내려간다. 두 무릎 사이로 천천히 들어가는 골반. 팽팽히 당겨지는 둔근과 햄스트링이 느껴진다. 더, 조금만 더. 깊이가 충분하지 못하다면 그건 스쿼트가 아니다. 엉덩이가 무릎 아래로 내려가는 그 순간, 팽팽히 당겨진 둔근을 힘껏 수축한다. 둔근은 엔진과 같다. 구덩이에 빠진 차를 빼내기 위해 미친 듯이 도는 엔진처럼 미친 듯이 둔근이 수축한다.
무릎은 절대 안쪽으로 모여선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햄스트링과 내전근으로 강하게 버티며 밀어야 한다. 민다. 또 민다. 그리고 이윽고 접혔던 몸이 펴지며 바벨이 제 위치로 올라간다. 이제 이걸 4번 더 한 뒤 4세트 더하면 된다. 생각을 하지 말자. 내려가면, 올라올 수 있다. 복압 유지를 위해 아주 약간의 숨만 강하게 뱉고 다시 내려간다.
고중량 백스쿼트는 모든 웨이트 트레이닝 마니아들에게 애증의 관계이다. 백스쿼트보다 힘든 웨이트 운동은 사실상 없다. 그리고 그만큼 효과적이고 짜릿한 운동도 없다. 인체의 근육 중 60%는 둔근과 허벅지를 비롯한 하체에 있다. 그 말인 즉 스쿼트만 열심히 해도 인체 근육 중 60%를 발달시킬 수 있다. 그렇게 발달된 하체 근육은 그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양의 포도당을 소모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몸의 당 수치가 조절된다. 건강을 위해 당 수치의 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또한 백스쿼트는 데드리프트 다음으로 가장 무거운 무게를 들수 있는 운동이다. 가장 무거운 무게를 들수 있다는 건 가장 많은 근육을 동원하는 운동이라는 걸 의미한다. 백스쿼트에서 동원되는 근육은 하체뿐이 아니다. 바벨을 짊어지는 승모근에서부터 지면을 밀어내는 발바닥까지. '후면사슬'이라 부르는 신체 뒷면을 강화시켜 힘 그 자체를 키울수 있는 운동으로서 스쿼트는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 인생에서 약한 힘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가방이 조금만 무거워도 힘든가? 계단 한칸 한칸이 버거운가? 정수기에 물통을 끼우는 게 두려운가? 오렌지주스 병뚜껑 여는 것 조차 쉽지 않은가? 제 아무리 발달한 현대 사회라 할지라도 힘은 우리 인생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스쿼트는 꽤 어려운 동작이다. 의자와 책상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현대사회의 인간들은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자세를 잃은지 오래 되었다. 그렇기에 스쿼트를 제대로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되찾게 된다.
전혀 필요없던 고관절과 흉추의 가동성. 뻣뻣해질대도 뻣뻣해진 햄스트링의 유연성. 보기 흉하게 말려있던 라운딩숄더의 교정. 이 모든게 제대로 된 백스쿼트를 위해서 필요하다. 즉 백스쿼트 하나만 제대로 배워도 현대인들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된다. 그렇기에 꼭 제대로 된 전문가에게 스쿼트를 배우길 추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중량 백스쿼트는 정신적인 면에 큰 영향을 끼친다. 백스쿼트를 비롯한 모든 웨이트 트레이닝의 절대원리 첫째, 점진적 과부화. 이 원칙은 간단하다. 어제 들었던 무게보다 오늘은 조금 더 무겁게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백스쿼트는 매일이 무겁다. 매일이 도전이다. 못 들어본 무게에 도전하고 성공하며 실패한다. 좌절하고 연구하고 한발 물러서기도 하지만 끝내 다시 도전하여 성공하고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정신적 성장은 근성장 그 이상의 성장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한다. 그래서 점점 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 하며 고민만을 쌓아간다. 당신 인생의 무게가 무거운가? 무거운 고민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가? 스쿼트를 해라. 언제나 고중량 스쿼트의 무게는 당신의 고민의 무게보다 무겁다. 일단 들면 아무 생각이 없이 앉았다 일어나면 된다. 그렇게 고통을 견디고 일어났다면 당신에겐 약간의 근육과 작은 힘의 성장, 그리고 큰 성공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