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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강인성 Oct 13. 2020

머리 긴 남자에겐 특별함이 있다

인간은 자유를 원하고 남자는 장발을 원한다

(본 글은 2020년 3월에 쓰여진 글입니다. 현재는 장발머리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끈부터 찾은 지 어느덧 4개월이 훌쩍 넘었다. 머리를 길러보기로 결심한 것이 2019년 6월 쯤 이였으니 진정한 장발이라고 불릴 수 있기까지 약 반년 가까이 걸린 것이다. 그렇게 장발이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계단을 내려갈 때 머리를 잡고 내려가야 하는 사소한 부분부터 어느 모임에 가던 대화의 화두가 한번쯤은 남자의 장발에 대한 것이 되는 부분까지. 그런 사소한 불편함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시선까지. 단순한 머리스타일이 나에게 가져다 준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장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기에 많은 남자들이 장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어서 일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다.       


 연극을 너무 좋아했다. 연극을 보고 글 쓰는 것이 즐거웠다. 사실 자신마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졸업 후의 선택은 취준이였다. 그냥 그때는 그렇게 했어야 될 것만 같았다. 그런 취준을 열심히 했을 리가 없었다. 마음 한 구석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연극에 대한 열정을 무시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꽤나 힘든 일이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느라 뻑뻑해진 목. 그 자체로 자유롭지 못한 나날이 이어졌다. 거기에 반복되는 실패와 무기력함까지 겹치며 자존감마저 떨어져갔다.     




 자유. 취준 1년 6개월만에 결정한 대학원 진학은 자유로운 삶을 위한 발악이었다. 내가 도전하기로 결심한 대학원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연극영화과와는 다르다. 연극을 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아닌 연극이론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선택했던 취준이 아닌, 내 열정을 위해 내 즐거움을 위해 자유롭게 선택한 결정 한 것이다.     


 시험을 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6개월. 온전히 나를 위한 6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마음 껏 내 시간을 연극으로 가득 채우며 만끽했다. 편하게 더 편하게. 옷도 내 마음대로 입었다. 그러다 어느덧 자를 때가 다가온 머리를 보았다. 굳이 잘라야하나?      


 그렇게 취준 생활 동안 기를 수 없었던 머리를 마음껏 길렀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머리카락도 내 어깨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앞머리가 눈을 덮었다. 두 달이 되자 귀 뒤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세 달이 되면서 지겹게 쓰고 다니던 벙거지 모자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네 달이 되자 머리띠 대신 머리끈을 찾게 되었다. 다섯 달 째엔 파마를 해서 곱게 웨이브를 주었다. 그리고 여섯 달 째. 머리가 어깨에 닿을락말락할 때가 되었고 나는 시험과 면접을 치렀다.     




 결과적으로 대학원은 떨어지고 말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결국 남은 것은 형광펜이 잔뜩 쳐진 세계 연극사 책과 세 장짜리 비평문, 그리고 장발머리 뿐 이였다. 당연히 처음 낙방소식을 들었을 땐 절망적 이였다. 내 연극 인생이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 이였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오고가는 와중에 문득 내게 남은 것이 눈에 보였다. 이제는 어깨에 닿아 덩덩하게 찰랑 거릴 수 있는 길이의 장발 머리말이다.     


 나는 내 장발 머리가 꽤나 마음에 든다. 머리를 빗으며 정리를 할 때 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문득문득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머리가 길었지? 내가 대학원 가겠다고 난리쳤던 게 5월 쯤 이였으니 벌써 10개월 가까이 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 비록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머리카락이지만 거기에 연극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던 그 당시 내 마음, 열심히 공부했던 내 기억, 그때 느꼈던 스트레스와 행복, 떨어졌을 때의 절망까지도 모두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헌데 머리가 마음에 드니 그런 기억들마저도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내가 헛짓거리 한 것은 아니구나. 적어도 그때의 나 덕분에 이런 멋진 스타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러니 장발 덕분에 절망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내 자신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발을 하고 다니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참 많은 말을 듣게 된다. 그래서 머리는 언제 자를 건데? 안 불편하냐? 그 머리 진짜 안 어울린다. 이제 슬슬 머리 자르지? 심지어는 꼴 보기 싫다는 말도 종종 듣고는 한다. (물론 다들 진지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나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이 재밌다. 평범한 머리를 하고 다녔을 땐 절대 들어보지 못할 말들 아닌가. 거기에 뻔뻔하게 대답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더욱더 장발을 유지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강해진다. 남들의 시선과 말은 절대 나의 정체성을 해칠 수 없다. 나 자신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말과 시선에 뻔뻔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자 그런 생각이 강하게 박히기 시작했다.     


 참 웃기긴 한다. 고작 머리를 기른 것 뿐 인데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말이다. 하지만 머리를 기르니 내가 나를 대하는 것도, 세상이 나를 대하는 것도 모두 크게 달라졌다. 내가 내 평범하지 않는 머리를 사랑하면서 나 자신을 더 사랑 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 속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그러자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당당하고 자유로워 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모든 결정이 결국 나 자신을 만든다. 나는 내 장발 머리를 사랑한다. 그건 내가 대학원을 가기로 선택했던 것도, 그 동안 했던 고생도, 낙방의 아픔도, 그리고 그 이후의 삶도 모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발을 선택한 과거의 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2020. 05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발 사진. 그때의 장발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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