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몸

by Remind

초급반 강습 첫날,

레인에 모인 열댓 명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 검거나 남색 수영복 차림이었다.

화려한 색으로 시선을 끌고 싶지 않은 듯 수모마저 어두운 색이었다.

괜히 수경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눈을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애써 출렁이는 물을 바라보는 그들 사이에는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자, 회원님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물 공포증을 없애드릴 강사, 김영훈입니다."


햇볕에 잘 그을린 피부에 활기찬 목소리를 가진 젊은 강사가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인사에 사람들의 얼굴에도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앞으로 함께 수영할 같은 반 회원님들이니 인사도 나누시고, 아는 척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 서로 인사들 하시죠! “


강사의 인사 제안에 모두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속삭이듯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목례를 건넸다.


회원들이 어색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던 강사는 익숙하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오늘 수업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물이랑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볼 겁니다. ”


첫 번째 관문은 물속에서 숨 참고 얼굴 담그기.

생각보다 간단한 지시였지만, 서윤에게는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자, 숨 크게 들이마시고, 얼굴만 살짝 담가볼게요. 셋 세고 나오시면 됩니다!”


서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수면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차가운 물이 코로 훅 밀려들어오던 그날의 감각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결국 얼굴을 담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은 곧잘 따라 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다음 순서는 오늘의 핵심인 ‘엎드려 뜨기’였다.


“우리 몸은 폐에 공기가 있어서 원래 물에 뜨게 되어있어요. 구명조끼를 입은 거랑 똑같습니다. 벽 잡고 엎드려서 몸에 힘만 쭉 빼보세요. 절대 안 가라앉아요!”


강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서윤은 벽을 잡고 조심스럽게 엎드렸다.

그러나 물에 얼굴을 담가야 한다는 공포가 어깨와 등에 바짝 힘을 주게 만들었다.

힘을 빼려 할수록 몸은 더 뻣뻣하게 굳었다.

결국 발부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치 무거운 추가 발목을 잡아끄는 듯했다.


“회원님! 어깨 힘! 어깨 힘 빼셔야 해요!”


강사의 목소리가 멀게만 들렸다.

두어 번 더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몸은 돌덩이처럼 가라앉았고, 그럴 때마다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던 어린 날의 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푸른 물속으로 한없이 끌려 들어가던 공포, 공기 대신 물을 삼켜야 했던 끔찍한 고통.


‘역시 난 안 되나 봐.’


자괴감이 축축한 습기처럼 온몸을 감쌌다.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포기하자.

서윤은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번엔 물을 이기려거나, 어떻게든 뜨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이 물에 모든 것을 맡겨보기로 했다.

벽을 잡은 손에 힘을 풀고, 아주 천천히, 물속에 얼굴을 묻었다.

두려움에 온몸이 경직되려는 찰나, 어깨와 목의 긴장을 의식적으로 풀었다. 팔다리를 무심하게 벌렸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래로 꺼져 들어가던 몸이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추더니, 아주 서서히, 부드러운 부력이 허리를 감싸 안는 감각이 느껴졌다.

귀가 물에 잠기자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물의 잔잔한 일렁임만이 남았다.


단 3초 남짓의 순간이었지만, 서윤에게는 영원과도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만 느껴졌던 내 몸이, 실은 이렇게 가볍게 뜰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은 나를 삼키려던 물이 건네는, 어설프지만 다정한 첫 화해의 악수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텅 빈 초급반 레인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옆 레인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한 분이 유영하듯, 소리 없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서윤은 생각했다.


다음 수업이, 아주 조금은 기다려질 것 같다고.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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