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의 우주
“자, 오늘 수업 끝! 고생하셨습니다!”
김영훈 강사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첫 강습이 끝났다.
물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서윤도 덩달아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강사가 흩어지는 회원들을 향해 덧붙였다.
“강습 없는 날에도 자유 수영 나오셔도 됩니다! 오늘 배운 거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연습만이 살길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윤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습도 힘들었는데... 혼자 와서 뭘 하지? 못해! 못해!'
상상만으로도 어색하고 막막했다.
하지만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는 그 순간까지, 귓가에 맴도는 물의 찰랑거림과 3초 남짓 몸이 물 위로 떠올랐던 그 생경한 감각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다음 날 저녁,
서윤은 홀린 듯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강습 날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초급반 레인은 텅 비어 있었고, 중급, 상급 레인은 저마다의 속도로 묵묵히 물살을 가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진지한 열기 앞에서 서윤은 감히 레인에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의 발길이 향한 곳은 한쪽에 마련된 유아풀이었다.
허벅지까지 오는 얕은 물.
유아풀은 어른이 된 서윤에게는 조금 부끄러운 공간이었지만, 깊은 물에 대한 공포를 생각하면 최선의 선택이었다.
서윤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어제 배운 ‘엎드려 뜨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쉽지 않았다.
얕은 물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얼굴을 물에 담그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몸은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으려 했다.
그때였다.
“서윤 회원님, 연습 나오셨네요! 아주 좋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높은 안전요원 의자에 앉아있던 김영훈 강사가 이쪽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강습 때와는 다른,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어제 하루 봤는데,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수십 명의 회원 중 하나일 뿐인 자신을 기억해 주다니, 왠지 모르게 쑥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격려를 받은 기분이었다.
“어깨 힘만 빼면 돼요. 어제 잘하셨잖아요.”
그의 담백한 격려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다. 서윤은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의 말을 되뇌며 물에 엎드렸다.
어깨 힘을 빼자. 물과 싸우는 게 아니야.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제보다 훨씬 부드럽게 몸이 떠올랐다.
3초가 지나고, 5초가 지나도 몸은 가라앉지 않았다.
서윤은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여덟, 아홉, 열.
열을 세고 고개를 드는 순간, 서윤은 자신만의 작은 우주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고작 10초였지만, 그 시간 동안은 세상의 어떤 소음도, 불안도 침범하지 못했다.
수영장 마감 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서윤의 시선이 저 멀리 상급반 레인에 가 닿았다.
첫날 보았던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힘들이지 않고, 마치 물 자체가 된 듯 유영하는 그의 모습은 서윤에게 아득한 목표점처럼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서윤은 조용히 되뇌었다. 오늘은 10초의 우주를 얻었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감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락스 냄새 섞인 차가운 밤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