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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혼자 있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처음 겪는 일이니 시행착오는 당연한거야

by 모유진







지금까지 청년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준비하며 경쟁 속에서 쉬지 않고 살아왔다. 일과 공부, 회식과 인간관계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회는 사랑과 결혼으로 다리를 놓아주며 건너가라고 등떠밀기도 했었다.
다리 앞에서 기다리는 가정이라는 책임감.
포기하거나 쉬고 싶은 그 마음을 가슴 한편에 꾹. 눌러 놓고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내가 이렇게 나약하면 안 되지.'


어떻게든 힘을 끌어올려야 한다. 토끼 같은 자녀와 배우자는 멈추면 안 될 이유일테니.

그래 힘을 내자.

그래서 우리나라에 파이팅!이라는 말이 인사처럼 쓰인 것 같다.



그렇게 애써 눈물과 땀으로 키운 자녀들이 성장해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고,

몸을 담그고 뼈를 갈아가며 일했던 회사에서 정년 퇴직을 맞고 나면 그들에게 새로운 시기가 찾아온다.




해야만 하는 일이 없는 시기.



나는 정년퇴직을 경험한 적이 없다. 하지만 상황을 떠올리고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그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당연하게 가야할 곳이 있었다. 학교와 일터.

그런 내게 목적지없는 날이 온다면.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일러주는 이가 없다면?



정년퇴직의 공허함과 허탈함을 내가 온전히 공감을 할 수는 없겠지만 거리두기를 통해 불안함을 맛보기에는 충분했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급행열차에 몸을 싣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찾으러 가는지는 잘 몰라."
<어린왕자> - 생텍쥐베리





매일 뒤쳐질까 초조해하며 몸을 싣었던 급행열차는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추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어도 깊게 빠지지 않고 얼른 이해하고 해결하거나, 덮어두어야 했다.

오래 끌어안고 있으면 해야 할 일들을 못하게 되니까.

빨리 털어서 정리해버리고 쌓여있는 공부와 해야 할 과제에 집중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힘든 감정에서 빨리 나오는 게 내가 성숙해지고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성장한 것은 '감정을 빨리 눌러버리는 근육' 뿐이라는 걸 알았다.











집 밖에 나가야 할 많은 일들이 사라지고 나니,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었다. '밖에도 안 나가는 데 왜 빨리 씻어야 해? 그냥 하루 중에 한 번만 씻으면 되잖아'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몰랐는데, 내게는 씻는 것 = 밖에 나가기 위해라는 공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모습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주 게으른 패배자라는 생각까지 흘러가 괴로웠다. 며칠 동안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갖고 나서야 이 공식을 겨우 수정할 수 있었다. 씻는 것 = 아침을 깨우는 일이라고.



내게는 또한 마음을 추스르는 일 =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위해서 라는 공식이 있었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들이 줄어들고나니, 상한 마음을 방치하는 시간이 늘었다.


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니 그 무엇도 할 에너지가 없었다. 옷을 차려입을 일도 없으니 빨래도 가끔, 청소도 가끔. 행동해야 할 이유가 줄어들어 갔고, 행동하지 않으니 감정도 쉽게, 오래 방치했다.

막힌 벽에 몇번 부딪히고 나서 감정을 돌보는 일 =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고쳐먹을 수 있었다.





만약 코로나를 겪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 공식을 고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사회생활을 바쁘게 하다가 결혼을 한 후에, 혹은 자녀를 낳아 길러 품에서 떠나보내고 난 후에야 수많은 공식들을 하나씩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 뒤에서 지켜보고 재촉을 하거나

채찍같은 결과가 보채는 상황이 있어야만 움직였던 나를,

조금씩 바꾸는 시간.


내 삶을 사랑하기에.

하고 싶은 일과 누리고 싶은 일을 위해.


나를 조금 더 사랑하기 위해 아침을 맞이하고,

더 기분 좋게 일어나기 위해 전날 저녁을 돌보면서,

지금 나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해야 할 일이 없어도 행동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과

혼자있는 연습을.


문구 출처 : <자존감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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