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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ella Jul 15. 2024

240626

우선 대화를 시작하는 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쩐지 놀라울 정도로 너무 졸렸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이탈리아에 도착한지 일주일쯤 됐으니 누적된 피로가 밀려오는 것일지. 아침에 일어나서 바리바리 움직이려고 했는데 그대로 잠들어 오후까지 꿀잠을 자고 말았다.

우체국이 문을 닫기 전 적어도 소죠르노 신청까지는 완료해야 했기에 황급히 짐을 챙겨 인쇄소를 갔다가 우체국에서 소죠르노를 신청했다. 소죠르노 신청에 있어서는 정말 사람마다 워낙 말이 다 다르고 행정 처리 기간도 너무나 달랐기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문제 없이 신청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게시판에.

우체국을 나와 한국 분께 추천받은 부동산에 들렀는데 한국 부동산과는 다르게 시간과 정신의 방같은 좁은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두고 부동산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원하는 조건과 연락처를 남기라고 하고는 연락을 줄 테니 가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방을 보러 가면 있는 매물을 바로 구경하거나 하는데, 방식이 다른건지 매물이 없는건지. 신기한 방식이었다.

부동산을 방문하고 나와 거리에서 한동안 물끄러미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기도 하고, 여행으로 다녀가기도 하는 이 곳. 여행 가방을 쥐고 돌돌돌 돌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지친 동시에 행복한 들뜸을 갖고 있었다. 나도 여행으로 피렌체에 방문했던 작년에는 저들과 비슷한 표정이었으리라. 물론....호텔 체크인을 하려는데 여권을 잃어버려 울고불고하며 밀라노까지 기차를 타고 달렸던 경험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지도를 켜 적당히 리뷰가 괜찮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피렌체는, 특히 첸트로는 아주 작아서 걷다걷다보면 다 어제 본 길이고 그제 본 길이고 그렇다. 이 식당도 익숙한 골목에 있었는데 음식 맛이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어떻든간에 나는 대단한 쫄보라서 식당 직원들이 음식 맛이 괜찮냐고 물어보면 항상 쉐프의 키스를 날리는 사람이지만.(엄지와 검지에 입을 맞추고 하늘로 던지는? 날리는? 형태의 제스쳐인데 아주 좋다는 의미이고, 이탈리아에서는 어디에서나 자주 사용한다.) 카메리에레 아저씨가 나에게 이탈리아어를 잘 한다며, 이탈리아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내가 일을 찾고 있는 중이라 하자, 그는 원하는 일이 있느냐고 했고, 젤라떼리아 일을 구하고 싶다 했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모 젤라떼리아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다. 이렇게 쉽게 일꾼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다니! 감사 인사를 하고서 그 젤라떼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해당 매장은 리뷰가 좋은 곳은 아니었는데, 델 피오레(두오모) 대성당 바로 옆 골목에 있어서 그런지 접근성은 좋았다. 카운터를 담당하고 있던 직원은 지금은 채용 담당 매니저가 부재 중이니 번호를 남겨 주면 확인하고 그가 연락을 줄 거라고 했다.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그 근처에 있는 다른 젤라떼리아에서는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이력서를 메일로 보내 달라는 공고를 붙여 두었기에 해당 공고도 사진으로 찍어 집으로 돌아왔다. 지원한다고 뭐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집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빨래를 했다. 원래는 비에 잔뜩 젖은 옷이 있어 어제 했어야 했는데 생일을 맞은 파르디스를 귀찮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하루 묵혀 두었다가 도움을 요청했다. 빨래를 돌려놓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어쩐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약을 먹고 잠들었는데, 일어나서 빨래를 꺼내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알겠지만, 딜레마라는 것은 이렇게 찾아온다.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잠을 자야 나아질 것 같은데 머리가 아파서 잠들 수 없다든가, 근육이 없어 운동을 해야 하는데 운동을 하려면 근육이 필요하다든가...하는 식이다. 잠에 들 수 없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부동산 앱인 immobiliare.it에 접속해 올라와있는 매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 한 군데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 곳은 누가 봐도 미끼 매물이었다. 우선 조건이 너무 좋았고, 집 사진은 외관을 찍은 사진 한 장뿐이었다. 한국에서도 몇몇 양심불량 부동산들이 같은 짓을 한다. 누가 봐도 혹할만한 매물을 올려 놓고서 막상 문의를 하면 그 집은 어제 나갔고 하지만 비슷한 집들이 있으니 보여주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실제로 속는 셈 치고 미끼를 물어도 가끔 괜찮은 집을 건지는 경우도 있었기에 이번 경우도 그러려니 하며 부동산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안녕, 나 이 집에 관심있는데 사진을 좀 볼 수 있을까?'

늦은 밤이라 답장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몇 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자동응답이었다. 답장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이렇다.

'안녕, 우리는 너무나 많은 문의들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일일히 문의에 답변해줄 수 없어. 네가 이 매물에 관심이 있어서 우리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주소)에 있는 우리 사무실로 방문해야 해.'

뭔가 '꾼'의 냄새가 났지만 어차피 들러서 손해보는 것은 아니니. 어차피 내일은 할 일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해당 주소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것은 일주일 남짓되는 나의 짧은 이탈리아 생활에 생긴 가장 불쾌한 경험으로 이어진다.....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 두둥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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