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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ella Jul 15. 2024

240627

요즘 세상에는 어딜 가나 도둑놈들이 판을 친다

어제 밤, 임모빌리아레 앱에서 누가 봐도 조금 수상한 부동산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아라벨라 리. 그녀에게 닥친 일은? 기대하시라. 이탈리아에서 집을 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해당 게시글을 참고해서 사기에 가까운 상술에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전편 요약 

해당 부동산에 방문하기 위해 지도로 위치를 조회해보니 버스를 타고 20분, 걸어서는 30분가량 걸리는 곳이었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10분차이면 아깝게 버스를 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물가가 무시무시한 이탈리아에서는 이렇게 한 푼 두 푼 아껴야 아사하지 않고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가 있다. 부동산은 첸트로가 아닌, 피렌체 노바에 있는 어떤 작은 마을에 위치해 있었는데 날이 더워서 쪄죽을 것 같았다. 피렌체는 분지라서 매우 덥다. 사람들 말로는 나폴리보다 더 더울 수도 있다고 한다. 고생고생을 해서 사무실 앞까지 가 보니 창문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사진으로 찍어두지 않아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대강 생각나는대로 적자면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 우리가 한 명씩 알아서 부를테니 밖에서 조용히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혹시 이전에 상담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으니(창문에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어 안을 볼 수 없었다.) 똑똑똑, 조그맣게 문을 두드리니 직원 한 명이 밖에서 기다리라는 듯 손짓을 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 이전 사람이 나왔고, 그제서야 나는 들어갈 수 있었다. 남자 직원 한 명이 나를 안내해주었는데, 그는 잘생겼지만 영어 발음에 이태리어 악센트가 너무 심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렵게 내용을 이해하자 다음과 같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매물을 보고 싶거든 250유로를 내고 등록해야만 한다! 250유로면 2024년 6월 기준 37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내가 당황하자 그는 지금 당장 등록해도 괜찮고 집에 가서 생각해봐도 괜찮다며 선택지를 주는 척했다. 여기까지 사무실에 입장해서 퇴장까지 3분가량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다시 땡볕으로 내던져지자 그제서야 몹시 화가 났다. 상술이구나. 잘 모르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이런 식으로 수수료를 뜯어내려는 상술인 듯했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이탈리아 부동산에서도 한국처럼 매물을 보기 위해 돈을 먼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미리 듣고 왔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어제 들렀던 부동산에서도 '등록비' 따위를 요구하지는 않지 않았던가? 우선 더운 날 한참 헥헥거리며 이 먼 곳까지 걸어온 시간과 기운에 대해 화가 났고, 내가 미리 이야기를 듣고 오지 않았더라면 이탈리아에서는 원래 이런가 싶어 멍청하게 그 돈을 지불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이 일기를 쓰며 해당 부동산에 대한 리뷰를 검색해보니, 어떤 사람은 250유로를 내고 등록했는데 자기가 어플로 보는 거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며, 부동산에서 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다른 이탈리아 거주 한국인 분의 말에 의하면 그런 곳에 유료로 등록해서 소개를 시켜 줘도 집주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부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에 부동산에서 아무 것도 해 주지 않는다고. 약혼자인 스칼렛이 검색해본 바로는 몇 년 전부터 유구하게 이어져오는 부동산 사기 수법인 듯하다고 했다. 다시 30분 동안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며 연신 투덜거렸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집에 도착해서 파르디스에게 푸념하듯 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니 그녀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설마 그거 내고 온 건 아니지? 라고 물었다. 내지 않았다고 하자 다행이라며 요즘 세상엔 어딜 가나 도둑놈들이 판친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나중에 이 이야기를 파르디스에게 전해 들은 마르코도 그거 내고 왔다는 건 아니라지? 라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집을 얻을 때 도움을 받았던 부동산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의 집에 잘 머물고 있으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의 형제 자매 친구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두고 싶다.

와중에 꼬마 레일라가 잔뜩 들떠 물건을 이것저것 들고 와 캐나다에 갈 때 가져갈 거라고 내게 자랑하듯 물었다. 그리고는 자기 엄마에게 캐나다에 언제 가냐고 묻자, 7일 후라는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일주일 후에 캐나다에 가? 그러자 파르디스는 7일 후에 캐나다에 가서 한 달 후, 8월 초에 돌아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7월 19일에 집을 떠나기 때문에 아쉽게도 돌아오는 그녀와 아이들을 맞이해줄 수는 없었다. 정이 많이 들었는데. 여기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예고 없이 금방 헤어지게 되다니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계속 피렌체에 머물 것이기 때문에 종종 연락하자고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조금 솔직한 속내를 내어놓자면 차라리 마르코도 함께 가는 거라면 집을 혼자 사용하게 되는 거라 편할지도 모르는데, 마르코는 피렌체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남는다고 한다. 오해 마시라! 호스트의 집을 혼자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약혼한 20대 여성이 유부남과 단둘이 집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이 껄끄러울 뿐이다. 뭐, 마르코는 젠틀한 사람이고 여차하면 방문도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방에 누워 이력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는데, 다음 카페에 한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에서 한국인 담당 매니저를 구인하고 있다는 게시글이었다. 당장 연락을 넣어 속전속결로 당일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을 진행하신 분은 이태리에 8년을 거주하셨고 대학도 여기서 나오셨다는 냇. 그녀가 유창하게 이태리어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보여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언젠가 저렇게 현지인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고, 나도 완벽하게 이탈리아 현지에 적응한 듯한 그녀를 동경했다.

면접이 끝난 후, 어차피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들어가야 했기에 해당 매장의 음식에 적응하고싶어 식사를 하고 가겠다고 했고, 냇은 직원 할인을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다른 직원들의 권유에 못이기고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더욱 느꼈는데,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성공한 커리어를 가진 멋진 인생 선배이자 이탈리아 거주자 선배였다.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냇이 본인이 결제하겠다며, 여기서 살면서 돈 나갈 일이 많을텐데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였고, 그녀는 소죠르노 문제가 해결되는대로 채용 확정을 주겠다고 했다. 식당에서 일하느니만큼 한 끼 식사를 제공한다는데 만약 채용된다면 식비도 아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았다. 꼭 잘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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