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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비카 카페인 Mar 26. 2018

자동차 앞에 있어 뼈다귀 끌고 올게

2018.03.26

'in the tip of my tongue'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머리는 무슨 단어를 말해야 할지 알고 있는데 그 단어가 혀 끝에 걸려 있는 것처럼 입 밖으로 나올 듯하면서 나오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우리 어머니도 단어를 자주 바꿔서 말하는데 혀 끝에 단어가 걸린 수준이 아니라 아예 머리에서 단어가 뒤섞여서 나온 수준이다. 예를 들어 뼈다귀 감자탕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차를 가지러 가면서 우리에게 뼈다귀를 가져올 테니 자동차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다. 자동차 대신 뼈다귀를 말한 것도 놀랍지만 감자탕은 어디 가고 뼈다귀만 남았는지도 의문이다. 


어릴 땐 어머니의 이런 습관이 웃기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서 어머니처럼 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유전자의 위대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아들이 자기 전에 침대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면 말해 놓고도 이게 무슨 뜻이지 할 때가 있다. 방금 읽었던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내용을 재확인해보면 십중팔구 동화책이 아니라 내가 엉뚱하게 읽은 모양새다. 가령 뽀로로가 쏜 총에 해적들의 비행기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는데 그림을 보면 뽀로로가 비행기를 운전하고 있는 식이다. 아들이 아직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넘어가지만 곧 내가 어머니를 보며 비웃었듯이 나를 놀리겠지.


아들 나이 때의 내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내 아들이 내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 마냥 나랑 똑 닮았다. 내 나이 때의 아버지 사진을 보면 내가 30년 전 아버지 사진에 들어앉아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내 아들은 나를 닮고, 나는 아버지를 닮고,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1만 년 전에 추위를 참아가며 사냥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찾을 것만 같다.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의미는 수 없이 많은 조상들의 유전자들이 섞여 모든 경우의 수를 거쳐 내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뜻일진대 그것이 글자도 없던 시대의 남자의 얼굴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점이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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