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8
가끔 일본 만화를 보면 남자는 다른 남자의 등을 보며 자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로 남자 캐릭터가 다른 남자 캐릭터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클리세에 가까운 대사이다. 그 비장함에 책을 보고 있는 내가 다 숨죽인다. 거대한 파도가 자기에게 덮칠 것을 알면서도 바다를 향해 당당하게 가슴을 펴 보이는 듬직한 남자의 뒷모습. 보통은 이 정도에서 묘사가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마무리라는 게 없다.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쳐 흠뻑 젖은 옷이 체형을 그대로 드러내 축 처진 뱃살이 보인다. 웃기지 않은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살짝 벚겨진 머리에는 이름 모를 해초가 착 붙어 있다. 난 파도를 보려고 바닷가에 기껏 자리를 잡았더니 묻지도 않고 자신의 등을 보라며 제멋대로 바다에 맞서더니 돌아서서는 약한 자를 도와줬다는 자기 위안이 입꼬리에 걸려있다.
세상에서 점점 잊히는 자신의 모습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소외받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아무도 참전하지 않은 전쟁을 스스로 만들고 승리하고 만족하는 모습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오롯이 알량한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한 일이지만 후세를 위해, 가족을 위해 했단다. 욕망을 표현할 배짱도 욕망을 이룰 능력도 없는 이의 초라함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