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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Dec 31. 2020

남편에게 브런치 앱을 지워달라고 했다

며칠, 아니 몇 달 전부터 고민하던 말을 2020년 12월 31일, 저녁에 드디어 남편에게 했다.


"브런치 앱을 지워줘. 글 쓸 때마다 당신에게 알람이 가는 게 신경이 쓰여."

"나, 별로 읽지도 않는데. 요즘 알람도 안 오던데"

"요즘, 내가 안 썼으니까. 글 쓸 때마다 신경이 쓰여서 안 써져."

"다른 글들도 읽긴 하는데. 소원이라니까 지울게."


그렇게, 남편은 바로 스마트폰에서 브런치 앱을 지웠다. 그 사람에게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 마음에 남지도 않을 일인데, 내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글을 쓰는 작가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삶을 알리는 것이 필연이고, 그에 막힘이나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나의 글을 읽는 것이 불편했다. 남편과 나는 싸우고, 화해하고를 무수히 반복한 사이이고 아직도 나의 마음에는 앙금이 있어 편하지많은 않다. 그렇다 보니, 남편이 없는 공간에서 나의 이야기를 쓰고, 기록하는 것이 유일한 낙처럼 숨통이 트이는 일이다. 남편 이야기를 거의 하지도 않지만, 나의 삶을 나 나름대로 보듬고 돌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딸의 이야기를 썼던 글이 조회수 십만이 넘어가면서 가족들도 브런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남편이 글을 읽기 위해 브런치 앱을 깔고 구독을 신청했다. 그 뒤로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남편의 스마트폰에 알람이 갔고, SNS 등을 잘하지 않는 편임에도 글에 하트를 눌러줬다. 참 고마운 일인데, 나는 그때부터 글 쓰는 것이 불편했다. 신나게 써지지가 않았다. 남편은 나에 대한 감정이 별로 없다는데, 나는 아니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감정처리에 있어 정말 다르다. 남편은 올라온 감정들을 그때그때 풀어버려야 하고, 조금만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도 불같이 화를 내어 다 꺼버려야 하는 편이다. 반면에 나는 감정들을 알아차리되 표현하려면 십만 년이 걸린다. 그러니, 남편은 다 표현하고 마음이 가볍다지만, 나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에 어지러운 편이다.

 남편에게 브런치 앱을 지워달라고 말하기까지도 수십 번은 고민을 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신중하다 할 수 있고, 결정에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결심했다. 나를 더 단단히 지켜가기로, 나의 원함을 표현하기로. 그 목표 하나를 실행했다. 잘했다!!! 가보자, 2021년도!!!


2020년의 100번째 글을 시원하게 써 내려가니,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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