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제목으로 적는대도 눈이 감겼어요.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고, 그 순간의 기억이 스치면서, 살다가 가끔 떠올랐지만, 이 정도로 아팠는지는 몰랐어요. 말 그대로 충격이었어요. 충격요법을 쓰신 거였다면 효과가 적중했을지 모르겠지만, 충격요법은 그로 인해 더 나아지고, 행복해져야 하기 위함이잖아요. 제게는 그 말이 아직도 아파요.
2학년 올라가서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후, 검사를 진행했고, 난독증 진단을 받았어요. 한글이 단순히 늦은 것이 아니라 글씨를 받아들이고, 해석하여 사용하는 것의 어려움이 명확해졌어요. 물론, 자라면서 다른 발달들로 인해 글씨를 천천히라도 익혀가겠지만, 난독증임을 몰랐다면, 아이와 저는 지옥이었을 것 같아요. 글씨를 모른다고 아이를 잡았을 테고, 아이는 자신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아주 깊게 받았을 거예요. 1학년 때도 이미 아이가 자신감을 잃었던 터라, 일찍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후회는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죠.
아, 이 기억이 스쳐가네요. 5월 중순쯤,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이때부터 담임선생님 전화 놀람증이 생긴 것 같아요. 아이가 한글이 너무 안 되니 가정에서 지도편달 바란다는 내용이었고, 따로 시간을 내어 붙잡고 했는데도 아이가 너무 모른다고 하셨어요. 집에 돌아온 아이와 이야기를 해 보니 선생님께 딱밤을 맞았다고 하네요. 아이에게 듣고 화 내기 전에 먼저 상황을 알라고 전화하신 거였나 봐요. 엄마 마음은 화도 못 내고, 친구들 보는 앞에서 딱밤을 맞았다니 안쓰럽고, 해도 안 되는데 어찌하라는 건지 속만 답답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선생님도, 나도 만나기만 하면 기다리자, 기다리자며 서로 인사했는데 아이는 그 시간을 홀로 버텨내고 있었네요.
난독증 진단을 받고, 아이에게 적절한 한글교육을 시작하게 됐어요. 활발하지만, 익숙해지기까지 낯가림이 심한 아이인 데다 차로 1시간 움직여야 하는 먼 거리 이동까지 초기 적응에 시간이 걸렸어요. 수업 중에도 엄마를 찾았고, 기분 변화에 따라 성취의 기복이 컸어요. 하지만, 엄마는 알잖아요. 이 시기를 지나야 아이가 안정이 될 것이라는 걸요. 3개월이 지나 담당 교수님과의 평가결과 면담 날이었어요. 교수님은 시작할 때부터 표정이 굳어 있더니 불편한 심상이 티가 났어요. 불안한 예감은 바로 맞아 들었죠. 기쁨 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변화 속도, 학습태도, 정서안정 모두 뒤처지며, 심리상담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하셨어요. 엄마인 제가 심리상담사인 것을 아는 상황이었는데, 이 말까지 덧붙이셨어요.
"아이가 나중에 커서 계약서도 제대로 못 읽어서 되겠어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게 하려고 지금 이대로는 안 돼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눈물이 나오는 것을 꾹 참았어요. 이 말까지 듣고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아이에게 이야기해서 잘해 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어요. 저희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인데 왜 저희가 죄인이 되는 거죠...
간신히 면담을 마치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기쁨 이를 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아니죠. 제가 중죄를 저지른 죄인이 되었어요. 딸의 난독증을 주변에 알렸을 때도 반응은 다양했어요. 친정 식구들은 저희가 힘들까 봐 마음 아파하셨지만 다른 분들은 비슷했어요. 그중에서도 으뜸은 이 말이었죠.
"그러게, 한글 공부 좀 잘 시키지."
약간의 방임주의를 선호하는 저에게 혼자 유난을 떨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반응들이 제일 많더라고요. 정말로, 우리 딸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계약서도 못 읽고 사기를 당하거나, 온전히 독립적으로 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그것이 다 제 탓이면 어쩌죠.. 복습도 철저히 시켜주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자신감도 올려주고 너무 받아주지 말고, 엄격하게 대하라는 말들이 '계약서' 한 단어로 응축되어 압박으로 전해졌어요.
그럼에도 둘째라 그런지 나름 내공으로 흔들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했어요. 혹시나 아이에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쁨이는 더 하지 않을 아이였거든요. 지금까지처럼 아이를 존재로 믿어주고, 아이의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주고, 지지하며, 힘들 때는 같이 아파해 줬어요. 중간중간 반성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주변의 말들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나와 아이의 온전한 치유의 힘을 믿어야만 했어요.
신기하게도 2학년 2학기가 되면서 아이는 학교에서도, 센터에서도 안정을 찾았어요. 아이가 부쩍 자신감이 올라갔다는 피드백도 듣고, 한글 발달 속도도 좋아졌다고 했어요. 센터의 선생님들도 아이의 특성을 파악해서 독특함은 받아주시고, 유연하게 수업을 진행해 주셔서 아이도 먼 거리 오가는 시간을 적응해 갔죠.
난독증 교육을 받은 지 1년쯤 되었을 때, 센터의 상황과 단계상으로 한글 수업이 종료되었어요. 마지막 평가 면담이 있던 날, 다시 담당 교수님을 뵈었어요. 계약서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마주해야죠. 다행히도 아이가 여러 면에서 골고루 향상되었고, 좋아졌다며 부모님이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해 주셨어요. 이제야 교수님께 맺힌 감정은 없어요. 보기에 얼마나 걱정되고, 답답했으면 그런 표현이라도 했을까 싶고, 지금이라도 나와 아이를 바로 보아주시는 것 같아 감사했어요. 다만, 자신이 표현한 극약 처방이 효과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마, 기쁨이를 경험해 보면서 아셨을 거예요.
저는 아이가 난독증을 겪으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아이가 거리의 간판을 읽는 것, 맞춤법 틀렸어도 보내주는 문자에서, 혼자서 문제를 읽고 풀어내는 것에서도 감동했어요. 얼마 전에는 겨울방학 일기도 오롯이 혼자서 다 해냈죠. 혼자 쓸 수 있어도 틀렸을까 봐 불안해하고, 확인하고, 보여주기 싫어서 안 쓰던 아이가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고, 틀려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 있게 써 내려갔어요. 이런 순간들이 제겐 너무도 소중해요.
어젯밤, 늦은 저녁을 먹으며 기쁨이가 말했어요.
"엄마, 나 꿈이 두 개 생겼어. 하나는 유기견을 멋지게 꾸며주고, 입양되도록 도와줄 거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관리도 해 주고. 하나는 프리파라를 열심히 해서 멋지게 만들 계획이 생겼어."
꿈이 있다고, 너무너무 해 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해주는 기쁨이.요즘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아이들이 효녀, 효자라던데 참 기특하죠. 혹여나 정말 글씨의 압박으로 복잡한 계약서 못 읽는다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라면 어떻게든 읽어낼 아이예요.
'기쁨아. 앞으로의 길에서도 너를 믿고, 엄마를 믿고 가 보자. 우리, 이만하면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