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사용 설명서 05
여러분은 나를 어떻게 인식하나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붙여준 대로, 평가해 준 대로 따라가지는 않나요?
저는 참 조용한 아이였어요. 낮을 가리고,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듯 없는 듯 듣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중 고등학교 때 힘들 때는 많이 우울했고, 자신감도 낮았어요. 제가 건강하지 않다고 여겼고, 뭔가 문제가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죠. 대학교 2학년 때, 미술치료 워크숍이 있었어요. 지금이야 심리프로그램이 다양하고 많지만, 그 때는 흔치 않은 수업이라 엄청 기대를 했답니다.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나무 그림을 그리라고 하셔서 열심히 그렸어요. 지면이 꽉 찰 정도로 큰 버드나무를 그렸어요. 저는 버드나무를 저의 분신이라 여길 정도로 좋아해요. 나무 그림을 창문에 붙이라고 했고, 미술치료 선생님께서 한 장씩 해석을 해 주셨어요. 이 나무는 어떻고, 어떻다고요. 이런 말에 솔깃 하잖아요. 저의 나무는 어떠했을까요? 바로 나왔어요. "우울하네요." 버드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쳐진 편이라 우울을 상징해요. 저는 치료 선생님의 한 마디에 '아, 나는 역시 우울하구나.' 판단을 내려버렸어요. 그 뒤로도 저는 우울하고, 뭔가 문제가 있고, 더 어린 시절의 경험들로 밑이 깨진 항아리로 믿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눈치를 보고, 조금만 실수해도 문제 있는 나를 확인하듯이 자책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되고, 포카혼타스 영화를 보면서 거기에 나오는 버드나무 할머니를 봤어요. 포카혼타스가 지혜를 구하고자 할 때 찾아가는 버드나무 할머니를 보며, 버드나무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어요. 그리고, 전래동화에서 도깨비를 물리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버드나무 잎이었어요. 제가알던 우울한 버드나무와 다르잖아요. 우울하고 약한 면도 있지만, 지혜롭고, 인내가 있고, 강함 역시 갖고 있었어요. 이 때부터 저의 힘을 다시 보게 됐어요. 나는 우울할 때도 있지만, 내면의 강인하고 현명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선택했어요. 점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학교 때 미술치료 선생님의 한 마디를 너무 쉽게 믿어버렸어요. 저를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의 판단을요. 저는 이 세상 유일무이한 사람이에요. 저와 기질이, 성격유형이, 애니어그램 유형이 같아도,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고, 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저에요. 내가 나를 어떤 사람인지 선택할 수 있어요. 그 힘을 더 키워서 성장할 수 있어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넘기지 않습니다.
이태원 클라쓰라는 웹툰과 드라마가 있어요. 저도 재밌게 봤는데요. 드라마의 한 장면 중에 마현이라는 분이 트랜스젠더임을 사람들이 알게 된 상황이 있어요.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개개인을 존중해 주지 못하는 모습이라 참 안타까웠는데요. 사장님과 지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비난하려는 자들 앞에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을 말하고, 당당한 눈빛을 발사해요. 이 때 나래이션으로 나온 시가 정말 멋있었어요.
나는 돌덩이
뜨겁게 지져봐라
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거세게 때려봐라
나는 단단한 돌덩이
깊은 어둠에 가둬봐라
나는 홀로 빛나는 돌덩이
부서지고 재가되고 썩어버리는
섭리마저 거부하리
살아남은 나
나는 다이아
(출처: 이태원클라쓰 드라마 중에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아요.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마세요. 나는 내가 선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