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이 시험 망친 날, 엄마의 선택

by 마음상담사 Uni

우리 집 첫째, 중 2 딸은 요즘 기말고사 기간이라 긴장감, 압박감에 보내고 있어요. 솔직히 저나 남편은 '공부는 알아서 하는 거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쪽이라 아이에게 공부 부담은 주지 않는데요. 아이 스스로가 받고 있어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자신도 어느 정도 해내고 싶고,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거겠죠. 어쩌면, 학업 관련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은 아이라서 더 불안하고, 긴장될 것 같아요. 친구들은 학원에서 지도받고, 문제도 많이 풀면서 감을 익히고, 정보도 많잖아요. 그에 비해 자기는 생소한 것 투성이다 보니 좌충우돌하며 시도와 도전 중에 있답니다.


오늘 기말고사 첫날이라, 어젯밤부터 긴장돼서 잠이 안 온다고 했는데, 다행히 컨디션은 좋아 보였어요. 아침 일찍 시리얼 먹겠다고 했는데, 마침 우유가 딱 떨어졌네요. 저도 눈만 간신히 비비고 얼른 슈퍼까지 뛰어가서 우유 사다가 대령했습니다. 시험날 아니면 그냥 다른 걸로 줬을 텐데, 저도 양심에 찔려서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왔네요.


시험이 끝났는지 오전에 딸이 전화를 했어요.

"엄마, 망친 것 같아~~~ 문제집 풀 때는 거의 다 맞았는데, 실수를 너무 많이 했어 ㅠㅠ"


"아쿠 우리 딸 속상해서 어떡해, 기대 많이 했었는데"


"... 엄마는 괜찮지? 상관없지?"


다른 친구들이 엄마한테 죽었다, 자살하겠다는 등 이야기를 하니, 딸도 저에게 묻네요.


"엄마는 너의 시험과 상관없어. 우리 딸이 속상한 게 맘 아프지."


이렇게 통화하고 저도 일 잠시 멈추고, 집에 들렀어요. 딸의 얼굴을 봤는데 상심, 근심이 한가득이에요. 딸 얼굴 보고, 부담 안 되게 위로는 해 줬는데 다시 일터로 가면서도 마음이 무겁네요. 잠시 멈춰서 생각해 봅니다.

가끔 상담할 때 저 같은 부모님들 계세요. 자녀가 공부를 못하거나 시험을 못 봤을 때 정말로 위하는 마음에 '공부 상관없다, 못해도 괜찮다'라고 부모님들이 말해줘도 아이들은 별로 위로가 안 돼요. 일단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학교에서의 체면도 있고, 못해서 속상한 마음이에요. 게다가 못해도 된다는 말은 자신을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말이라는 거죠. 그래도 마음이 안 풀리고 있으면 '네가 노력을 했어야지, 하지 않고 무슨 할 말 있냐'가 되니까 위로도, 채찍도 아닌 서로에게 애매한 말이 돼버립니다.


딸도 잘해 보고 싶었을 텐데, "엄마, 나, 시험 잘 봤어~~"하며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허무한 상태겠죠. 내일도 시험 이어지는데, 자꾸 기운 쳐지니까 또 망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들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도 속상한 마음 풀고, 내일을 위해 자신을 돌보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기로 했어요. 앞으로 닥칠 수많은 시험과 난관 앞에서 좌절할 날도 많을 텐데, 그럴 때 자신을 어떻게 돌보고 힘낼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하잖아요. 지금 그것을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내신 시험 점수보다 저는 이것이 더 중합니다. 딸에게 전화했어요.


"딸아, 저녁에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뭐든 말해. 우리,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


"ㅎㅎ 생각해 볼게, 엄마~"


부모로서, 시험 성적도 중요하지만, 딸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일어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 주세요. 괜히, 시험 망쳤다고 부모님이 더 실망하고, 아이에게 차갑게 대하고, 뭐라고 잔소리 날려버리면 당장에 아이가 정신 차리고 공부하도록 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하지만, 긴 인생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비난하고, 실패하면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라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거예요. 우리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요?


실망하고, 쓰라린 날은 더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 먹으면서 몸도 마음도 돌봐줘야 해요. 시험이니까 좋은 곳은 못 가도 먹고 싶은 음식 생각해서 자신을 위해 대접해 줄 수 있어야 해요.


딸의 시험 망침은 스스로 마음을 돌보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 방법만이 정답은 아닐 거예요. 딸과 저는 앞으로도 계속 찾아갈 거예요. 우리,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로, 내 생애 가장 잘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