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이 문제는 별 거 아닌 거 같아요, 이런 일까지 얘기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시면서 자기 이야기하시기를 주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별 거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행동은 그 말을 하기까지 망설이고, 해도 되는지 검열해 보고, 한참을 돌아서야 이야기를 하게 되세요. 저희가 이런 것을 콘텐츠와 프로세스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말로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은 콘텐츠, 전후의 맥락과 행동, 반응 전체를 살펴보는 것이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어요. 콘텐츠로만 따지면 별 거 아니라고 하셨으니 큰 문제가 아니구나 할 수 있지만, 프로세스로 보면 본인에게 별일이 아님을 알 수 있죠.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우신 거지만, 본인에게는 한 번도 남에게 말해 보지 못하고 혼자만 고민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힘들게 큰 용기 내어서 말을 하게 되면 그 내용이 별 게 아닐 리가 없죠. 대부분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혼자 견뎌내셨어요? 혼자만 참아내셨어요?"라는 반응이 바로 나올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놀라는 상황이 됩니다. 특히, 초중고 학창 시절에 이런 일이 많아요. 당시에 학교에서 일이 생기거나 친구 사이에 따돌림, 학교폭력이 심했음에도 부모님께 말을 못 하고 참으셨던 경우가 많았어요. 부모님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거나 사이가 좋지 않으실 때, 나까지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별일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누르고, 느끼지 않도록 차단하며 그 시간을 홀로 버텨낸 거죠. 또, 말해 봤자 부모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도 아니고, 해결해 주실 것도 아니니 나 혼자 알고 넘어가자 되기도 해요.
저는 중학교 때 거의 친구가 없었고, 하굣길도 혼자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식날 운동장에서 방학식을 하고 바로 집으로 하교하는 상황이었어요. 남녀공학의 전교생이 한꺼번에 좁은 교문으로 향하다 보니 서로 밀치게 되고, 아수라장이 되더니 저의 앞 쪽에서 학생이 넘어졌어요. 뒤에서는 상황을 모르고 밀고 나오다 보니 우르르 넘어지면서 학생들 틈에 파묻히게 되는 거예요. 저도 넘어졌고, 소리를 지르고, 울면서 간신히 간신히 그 틈을 빠져나왔는데요. 정말 깔려 죽을 뻔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무서웠던 공포를 느꼈어요. 교문을 빠져나와서는 혼자다 보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색을 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어요.
그날 일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요. 어차피 별 반응이 없을 테니까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되어 그날의 기억이 스치면서 죽을 뻔하고 너무도 무서운 상황들을 겪어도 혼자 담담하게 처리해 버리는 저를 알았어요. 그 날 뿐만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말하지 않고 혼자 감당해내는 것이 익숙해진 거죠.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저의 몸과 마음을 챙겨주지 못하고 내팽개쳐 둔 것 같아요. 아픔에도 내성이 생겨서 아픈 줄 모르니까 사람들에게서 저를 건강하게 지키지도 못했어요.
저처럼 '내 문제는 별 거 아니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필요 없어, 나 혼자 처리해야 돼.'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셨나요? 별거 아니지 않아요. 당신이 그 순간 아프고, 억울하고, 놀라고, 힘들었다면 분명 문제였던 거예요. 당연히 힘들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없죠. 중요한 건, 나의 문제가 별거 아니고, 이 정도는 힘들 게 아니야 라고 내 아픔을 축소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나의 상처를 외면하고 봐 주지 않으면 나에게 가혹한 일 같아요. 저희 지나가다가도 모르는 사람인데 길에 넘어지면 괜찮나? 크게 다치지 않았나 마음이 쓰이잖아요. 그것처럼 나도 마음이 아플 때, 아픈 마음 인정해 주시고, '어떻게 돌봐줄까? 보듬어 줄까?' 마음 써 주세요. 왜냐고요? 제가 늘 말씀드리죠~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당신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존재니까요.
저희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타인의 돌봄이 필요했던 존재였지만, 어른이 됐다는 건, 이제 내가 나를 돌봐줄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 나의 진짜 어른이 되어요. 또다시 '별거 아니야.'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별거 아닌 게 정말 맞니?' 다시 물어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