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이에 대해 물으면 저는 빠른 팔공, 1월생이라고 말해요. 2000년대 초부터는 1, 2월생의 경우 태어난 해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2월생까지는 전해의 학생들과 같은 학년으로 입학을 했어요.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어차피 학년으로 치니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아동기까지도 뇌와 신체 등의 발달 차이가 존재하니, 나는 바보인가, 잘 못하나 눈치를 많이 보게 된 듯도 해요.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다른 문제를 일으키더군요. 선후배와 친구 사이의 족보를 꼬이게 만들고, 왠지 박쥐처럼 위아래 나이 양쪽에 상황 따라 치고 빠지려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빠른' 80년생입니다. 사회에서 79년생을 만나면 당연히 학교를 같이 다닌 세대이니 친구 먹으려 하면 살짝 기분 나빠하고, 80년생을 만나면 제 딴에 엄연히 아래 학년들이었으니 언니라 부르지 않으면 어색해졌어요. 지금은 80년생에 꼭 끼려 하죠. 한 살이라도 나이를 줄이고, 젊은 쪽에 끼려는 본성이 발동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지인분의 부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나이를 묻길래 80년생이라 했더니 참여자로 가능하대요. 알고 봤더니 밀레니얼 세대 엄마들의 의식 설문이었더라고요.
'내가 밀레니얼 세대라고? 내가?'
갸우뚱했지만, 공식적으로는 80년생부터 밀레니얼 세대라 하니, 첫 선두주가가 되었어요. 당당히 나를 표현하고,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며, 소신을 빛내는 세대라 생각했는데, 과연 제가 그런 사람인가 싶었어요. 어쩌면 저는 79년생들과 학교를 다니며 그들이 말하는 격변의 70년대를 살았고, 변화의 흐름이 바뀌는 80년대를 시작했네요. 빠른 팔공 1월생인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저의 20살은 방황의 시기였어요. 상담사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심리학과에 입학했지만, 2년 동안 인문학부생이래요. 1년 전부터 시스템이 바뀌어서 3학년이 되어서야 심리학과 학생이 되는 거예요. 심리학과만 보고 무작정 들어간 학교까지 이동시간은 왕복 5시간이었어요. 1호선 수원역에서 지하철만 1시간 30분을 타고 4호선 거의 끝까지 가면 또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죠. 수원역에서도 집까지는 버스로 30분이 넘는 거리지만, 제가 선택했으니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어요. 지하철에 그렇게 오래 있다보니 별의별 일이 많았어요. 성추행도 당하고, 소매치기를 벌이려는 아저씨와 극적으로 눈이 마주치며 몇 초간의 정적을 버텨내고 살기 가득한 눈빛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다리를 꼬고 앉았다가 어디서 남 생각 안하고 앉아있냐는 아주머니의 호통에 트라우마가 생겨 절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을 엄청 썼어요. 또, 가장 어이없었던 기억은 옆에 앉은 분이 CD플레이어가 안 된다며 건전지가 먹통이라고 친구에게 말하는 소리에, 제 머릿속에 '나 때문인가 봐..'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 내가 건전지가 안 되는 것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아...' 스스로를 끝도없이 비난하는 목소리에 좌절했어요. 그 중에서도 공황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충격이었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어지러워지고, 하늘이 샛노래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숨이 멎을 듯해 내렸다가 타야만 했어요. 이런 일을 몇 번 겪으니 무섭더라고요. 이러다가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직감에 학교 내의 상담실에서 하는 사회공포증 집단상담을 신청했어요. 지금이야 혼밥의 달인이지만, 그 때는 식당에서 혼자 밥도 못 먹고, 발표도 자신없고, 대화할 때도 상대의 평가가 신경쓰여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피해 다녔어요.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학기 과제보다 더 열심히 숙제하고, 연습을 했답니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 연습하고,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 불안이 어느 정도인지를 체크하며 보냈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스무살부터 나를 찾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올리려 누구보다 노력했던 시간들이 어느 덧 20여년을 넘겼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떻냐구요? 예전에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TV나 책에서 자신을 정말 사랑한다는 말을 듣거나 읽으면, 전혀 감이 안 왔어요. 그 느낌을 모르니까 그들이 과장하거나 거짓말로 말하는 건 아닐까 의심했고, 나는 평생 느껴보지도 못한 감정에 질투가 났죠. 후에는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해지고, 쓸모없고, 실패자 같기만 했어요. 무엇도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고, 실수로 망쳐버리진 않을까 두려워졌죠. 이런 감정의 사이클 속에서 꾸역꾸역 살아내 왔어요.
그랬던 제가 자신 있게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니 어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나 싶죠. 기적은 없었어요. 개인상담, 집단상담을 받으면서 중구난방이었던 퍼즐 조각들을 맞춰갔고, 무엇보다 마음의 작동 원리를 깨닫게 되면서 엉킨 실타래들이 스르르 풀려가게 됐어요.
제가 했으니, 여러분들도 하실 수 있어요. 상담실뿐만 아니라 강의실, 모임 등에서 만나 조금이라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혼자 있을 때면 우울하고 외롭고 불안이 밀려온다는 이 시대의 다수의 분들도 바뀌실 수 있어요.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내가 잘 사나 보다 여기며 지나갔을 텐데 강제적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구석에 미뤄두었던 상처와 아픔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어요. 이럴 때가 내 마음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적기이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신데렐라를 무도회에 보내게 해 주는 마법사의 요술봉 따위는 없기에 바로 바뀔 수 없단 걸 아시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20년, 30년 넘게 마음에 자리 잡아온 프로그램의 오류를 수정하고, 프로세스를 바꾼다는 것이 큰 산을 옮기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듯이 아무리 크게만 보이는 일도 핵심을 파악하고, 정확하게 행동을 짚으면 예상보다 변화가 빨라지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듯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상담실에서 만난 무수한 분들의 변화를 목격했기 때문이죠. 짧게는 4, 5회기 만에, 길게는 1년, 3년도 걸리지만, 처음과는 다른 사람들이 되어 말과 행동, 생각이 달라져 있습니다.
상담사, 혹은 심리 전문가라는 타이틀로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여 어떻게 해라는 식의 전개는 너무도 흔한 것 같아요. 저는 상담사가 되기 위해 필수였던 정신이 건강하고 성장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지금도 당연히 완성 마침표가 아니지만, 한 발짝 앞서 치열하게 걸어왔던 길을 통해 누군가에게 힘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삶의 전반부 20년은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물살에 휩쓸려 지내왔어요. 더 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 후 20년을 달리기도 하고, 바닥에 처박히기도 하며 간절히 원했던 나 자신을 진짜로 사랑하게 되었어요.
상담실에서 뵙지 않고도 여러분의 마음이 원래의 나로서 건강하고, 힘 있게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얼마간의 여정 일지 모르지만, '나로 자신있게' 우리 역사적인 한 발을 떼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