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2년간 학교에서 당신의 삶에 스며든 것은

Mind Zero 프로젝트 2주차

by 마음상담사 Uni

오랜만에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갔더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더라고요. 예전에는 순진하게 모두 학생들인 줄 알았어요. 얼마 전에 알았는데 교복 입고 들어오면 할인도 받고, 성인들도 교복을 대여해서 입더라고요. 마치 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즐긴기는 문화였어요. 교복을 입고 커플끼리, 친구들끼리 해맑게 웃는 분들 보며, 문득 생각이 났어요. 매일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 했던 그때는 어떠셨을지요..


여러분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까지 총 12년 동안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나의 20년을 돌아보면서 가정 못지않게 많은 시간을 보냈고, 중요했던 공간이었던 학교.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고, 잃었어야 했던 미해결 과제들이 남아 있을까요?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많죠. 성적, 공부로 받았던 성취와 스트레스, 좌절도 있어요. 선생님들에게 받았던 인정과 차별 혹은 폭력도 있을 수 있죠. 또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있죠.

저는 얌전하고, 말이 없는 아이 었다 보니 학교에서 혼날 일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거나 특출 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런 애가 있었지 하는 정도의 존재감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도 보통 2~3명과 깊이 사귀는 편이었고요. 특히, 중학교 때는 자신감이 가장 하락한 시기여서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제가 마음을 안 열기도 했고, 친구들도 다가오기 꺼려했던 것 기억이 있어요. '쟤는 뭔데 맨날 말도 없고, 저러고 있어?'라는 정도요. 요즘 말로 '은따'일 수도 있겠는데, 그 시절에는 왕따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어요. 제가 고3이었던 해가 1997년이었는데, 반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던 말이 '전따', '왕따', '은따'였어요. 반에서 따돌림받는 걸 비롯해서 전교에서 따돌림받는 아이라고 하면서 저희끼리 '쟤가 걔야?'라고 말했던 생각이 났어요. 사실 그때는 정말 별생각 없이 그런 말들도 지어 내는구나 싶었어요. 그 말들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상처주게 될지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왕따' 현상은 점점 더 심각해졌어요.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부터 10대 청소년, 20대, 30대 이후의 성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상담에서 만나왔어요. 상담을 하다 보면 꼭 만나는 기억들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비슷한 한 마디가 있어요.

"제가 왕따였거든요."


이 말이 나오면, '아.. 역시 관계에서 아픈 경험을 하셨구나..' 하며 마음이 저려와요. 특히, 사춘기 때는 가족보다 또래관계에서 힘을 받는 시기잖아요. 선택권이 없었던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고, 지지를 받으면 좋을 텐데, 그마저도 막히거나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다가 갑자기 한 친구와 다투었는데 다음 날부터 다른 친구들이 다 무시하더래요. 톡방에서 심한 욕설을 듣기도 하고, 톡방에서 퇴장당하기도 하고요. 전학을 갔거나 지역이 먼 곳이어도 뜻을 갖고 지원해서 진로를 정했는데 학생들이 어울려 주지를 않아서 한참을 마음고생해야 했던 분들도 계세요. 반 친구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는 사건을 겪는 분들도 있고, 의심을 받고 범인으로 몰리거나 해명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로 학교를 다녀야 했던 분들도 있어요.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 때 반에서 왕따 게임까지 있었대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 친구를 따돌림당하는 것을 놀이처럼 했었대요. 그날의 경험으로 충격을 받아서 친구들 사이가 안 좋아지고,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을 엄마가 된 지금도 가슴 한 편에 남겨져 있는 분들도 있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에요. 나 스스로 건강하게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내가 누군지를 타인의 피드백으로 저장하게 되는 청소년기예요. 한 사람일지라도 나를 무시하고, 싫어하고, 소외시킨다면 스트레스가 커지잖아요. 한두 명도 아니고, 20명이 넘는 반 학생들, 복도에만 나가도 지나가는 학생들이 따가운 눈초리와 비웃음을 날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일주일에 5일을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3~4시까지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그곳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점심시간도 급식실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먹어야 하는데, 밥도 안 먹게 되요. 다들 삼삼오오 짝 지어서 먹고 있을 때 혼자 먹어야 하느니 굶는 게 낫대요.

그나마 부모님, 선생님께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얘기해도 뾰족한 수가 없대요. 부모님도 학교를 옮기거나 그만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조금만 참고 버티래요. 어쩔 수 없으니까 무시하고 다니래요. 교문 근처만 가도 심장이 두근대고, 발이 안 떨어지는 그곳에서 버텨내래요. 몇 년을요... 선생님들께 알려도 잠시만 막아주는 임시방편이거나 오히려 알렸다가 후한이 더 두려운 상황이 만들어져요. 또, 내가 따돌림을 당하는 대상에 끼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되겠다 생각하며 두려웠던 분들도 계세요. 방관자라고 하지만, 이 분들도 잘못된 일에 용기를 내기도 두렵고, 따돌림당하는 분들의 편에 서기도 무서웠던 마음의 갈등이 컸어요.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분들이 계실까요? 학창 시절이 쉽지 않기도 했지만 잘 보냈던 분들도 계실 거예요. 글에 다 담을 수도 없는 무수한 따돌림의 이야기들에서 떠오르는 생각, 기분을 알아차려 보세요. 어떤 것들을 알아차리셨나요? 우리, 지나간 세월이지만 12년간 학교에서 나와 우리가 어떤 경험으로 보냈는지 떠올려 봐요. 그다음에 찬찬히 보아요.


저는 자신이 왕따라고 말씀하시면 이 말을 덧붙여요. 그 시기에 따돌림을 경험하셨던 것이라고요. '나 자신=왕따'라는 공식은 성립할 수 없으니까요. 어느 시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있다면 치유해야 하고, 보듬어 줘야 해요. 그때는 지나갔지만 앞으로 만날 관계들에 또 영향을 미칠 테니까요. 알게 모르게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이 관계에서도 또 내 처지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머릿속에서 위험 경보로 울릴 거예요. 다시 아프고 싶지 않으니까요. 생존 본능처럼요.


우리나라는 인성교육 진흥법이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어요.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의무로 지정했어요. 도덕, 윤리 과목 의외에도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들어야 하는 나라가 됐어요. 국회에서 발표한 인성함양 진흥재단 법안 발의 제정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2014년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무너진 인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특히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성교육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범국민적 차원의 인성 운동을 통한 인성 함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증대되고 있어서 이런 법안을 제정했다고 밝히고 있어요(출처: 정의화 외, 2015. 4. 16. '인성함양 진흥재단 법안'의 안 번호 1914747호)


법안의 제정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만은 없는 이 현실 앞에 우리 잠시 멈춰봐요. 사회 전반적으로 인성 함양이 필요할 만큼 우리 사회와 학교, 가정은 얼마나 무너져 있었던 걸까요? 학생들이 보호받아야 할 학교 안에서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였잖아요. 또, 그 안에서 있던 우리들의 마음은 얼마나 다쳤던 걸까요? 이제는 그 아픔을 드러내고, 서로 보듬어야 해요. 모두 겉으론 아닌 척, 괜찮은 척 하지만, 하나같이 속으로 끙끙대며 앓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의 아픔들이 올라오면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수용하고 약을 발라줘야 해요. 이것이 가장 먼저예요.

한발 더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속에서 버텨낸 힘들을 찾아 주세요. 상처만 받은 게 아니에요. 시련 속에서도 우리는 분명 힘을 내어 살아내 왔어요. 이 힘을 기억하는 것에서 우리를 다시 살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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