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 괴롭고, 삶이 힘들 때 상담실을 찾아요. 뭔가 뜻대로 풀리지 않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마음이 괜스레 무겁고, 다른 사람들과도 지내는 것이 힘들 때 길을 찾기 위해 상담을 신청합니다. 지금 현재의 괴로움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남들과 달리 그 분만이 강하게 느끼는 지점이 있어요. 예전에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지 물으면 꼭 도착하는 곳이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요..."
"중학교 때요.."
과거에 문제가 있기에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과는 달라요. 현재 나의 삶에 막힘이 있는데,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마음속에 미해결 과제가 떠올라 있는 거예요. 그러면 미해결 과제를 다루며 그때 느꼈던 감정과 욕구가 봉인 해제되듯이 풀리면 지금의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살다 보면 지금 막히는 일들이 과거와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때가 다반사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20년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꼭 필요해요. 부모님이 나를 사랑 못 주고, 상처만 받았다고 비난하고, 분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그 기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고, 그 경험으로 인해 사람들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 뇌는 20대 초까지 발달하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워요. 대신에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말, 시선, 반응 등의 피드백으로 판단해요. 마치, 백설공주 속 새엄마의 거울 목소리처럼요. 새엄마가 물어보잖아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나 자신이 소중하고 예쁘다 만족하면 되는데, 새엄마는 어른이 되어서도 늘 타인의 평가에 매달려 살아요. 어렸을 때 주변의 건강한 피드백들로 나를 인식했다면 더 이상 필요 없을 거울에 여러분도 계속 매달려 있지는 않나요? 만약 그렇다면 다른 기질, 성격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마이크로 집단이자 사회인 가족을 살펴보세요. 가족이란 이름으로 맺는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았는지를요. 그 안에서 사랑, 상처, 안정, 불안, 지지, 수치심 등을 받았을 거예요.
저는 부모님과 3명의 딸 중 첫째였어요. 내향적이고, 감정이 중요한 가슴형의 사람이라 가족 내에서 잘 화합하지 못했어요. 원래 좋은 분들이시지만 부모님도 처음 겪는 부모생활이라 만만치 않은 환경 앞에서 우울하고, 분노하고, 하루하루 버텨가셔야 했죠. 분노의 대상은 주로 가족들이 된다는 것이 늘 한탄스럽지만요. 작은 일에도 버럭하고 화를 내셨던 아버지 덕분에 저는 늘 눈치를 보고, 숨죽여 살려고 했어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만 지냈으면 예쁨도 받고 중간은 했을 텐데, 제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강한 편이다 보니 뜻대로 안 되면 삐져 있었죠. 지금도 선명하게 생각나는 말이에요.
"입 또 대빨 나왔네, 지만 생각하지!!!"
삐져있다는 말, 억울하게 생각하는 1인이에요. 나도 마음이 상한 이유가 있는데 저만 이상하고, 문제가 있다는 듯 표현되는 말 같아서 딸들에게도 삐졌다는 말 대신에 마음이 상했냐고 묻는답니다. 저는 원했던 것이 안 된다고 단칼에 잘라 말할 때마다 제 존재가 무시받는 것 같았어요. 친절하게까지 아니더라도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거나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길 원했어요. 감정의 소용돌이가 큰 가슴형이라 마음을 고쳐먹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부모님도 사정이 있었겠지만 저는 억울하고, 치사하고, 더럽고, 속상함들이 쌓이면서 마음의 문을 닫게 됐어요. 더 이상 상처 받기 싫으니까요.
또 한 장면은 10살 때 저녁 식사 시간에 가족이 둘러앉아 국수를 먹었던 날이에요.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야"하는 큰소리와 함께 젓가락이 날아왔어요. 오른쪽 얼굴 옆으로 비껴갔지만 깜짝 놀라 바라보니 아빠가 화가 나셔서 저를 째려보고 있으시더라고요. 후루룩 소리 내서 먹는다고 화나셨대요. 저는 창피하기도 하고, 겁먹고, 서러웠고, 그 뒤로 아빠만 보면 얼음이 됐어요. 고등학교 때는 아빠의 후루루룩 삼키고 먹는 소리만 들어도 속에서 부글부글 분노가 치밀어올라 같이 식사하는 것도 곤욕이었답니다. 10살의 그날 이후, 저는 소리 내어 먹지 못했어요. 국수는 물론, 라면, 밥 모두요. 친구들은 우아 떨며 먹는다고 했지만 저는 또 소리 내어 먹다 혼날지 모르니 늘 두려웠던 걸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참 알게 모르게 묻어있어요. 지금까지도요. 저는 부모님이 원하는 장녀의 모습이 아니었고,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살갑지 않은 아이다 보니 관심도 못 받았어요. 특히, 동갑의 사촌 2명이 있었는데,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특출 나다 보니 저는 더 뒷전이었죠. 사춘기가 되면서 저 자신을 생각했을 때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사랑도 못 받고, 이기적이고 못된 아이야. 나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고 살아야 돼. 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하면 나는 미움받을 거야...'
저도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나름의 전략을 세운 거겠죠. 가족 내의 경험들로 내려진 전략 덕분에 저를 표현하는 방법을 안 하다 보니까 잊어버렸어요.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갖고 있었던 귀한 능력을요.
상담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어렸을 때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가족이란 이유로 용인되고, 숨겨지고, 항변 못하고 버텨내야만 했던 순간들의 기록을요. 때려도 신고하지 못하고, 부모의 이혼으로 낙인찍힐까 늘 들키지 않도록 감춰야 했고,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원하는 대로 공부하고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고 여겼어요. 특히, MZ세대의 학창 시절인 90년대 후반에 터진 IMF는 가정을 뿌리째 흔들어서 빚쟁이들에 쫓겨다니고, 어려워진 환경에서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할 말을 잃을 때도 있고, 가슴이 아파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공감하며 상담의 본연에 임합니다.
여러분도 영화 보기 전, 상영 예고편들처럼 짧지만 가족과의 나를 중심으로, 순간 떠오른 장면들이 있나요?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그 장면 속의 내 마음에 느껴진 감정, 욕구 등의 미해결 과제들을 알아차려보세요. 알게 된 내 마음을 안아주세요.
' 그때 진짜 무서웠지. 저녁 맛있게 먹었을 뿐인데, 갑자기 혼나면서 화나고 놀라도 억울해도 더 혼날까 봐 암말 못하고 삼켜냈지.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지. 알아. 내가 그 맘.. 여태 밥도 소리 내어 편히 못 먹고 너무 안타깝다...'